풍수이야기(칼럼) 110

족보 유감

족보의 사전적 의미는 ‘한 가문의 계통과 혈통 관계를 밝혀 놓은 책‘이라 한다. 즉 조상과 자손을 망라한 자료가 족보인데, 죽은 자와 산 자의 정보를 같은 지면에 적시(摘示)한다. 그 자료 중에는 망인(亡人) 별로 음택 위치, 묘의 좌(坐), 매장 기록 등 묘택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도 한다. 얼마 전 필자의 지인이 조상으로 알고 수십년 동안 벌초 관리해오던 묘택의 존재가 과연 조상이 맞는지 여부를 알고 싶다고 의뢰하였다. 또한, 꽤 넓은 면적에 조상 묘가 산재해 있는데 그중 한 기의 조상 묘를 오래전 실전한 채 위치를 파악하지 못하는 사정이 있어 도움을 요청하였다. 현장에 도착한 후 위 실전하였다는 조상의 족보 기록을 검토하였다. 해석은, 子 O O의 자(字)는 ‘상보(相補)’요 정묘생이다. 묘는 선영의..

안마산과 아내산

해발 303m 안마산과 봉의산(301.5m)은 비슷한 높이이다. 안마산은 동쪽 대룡산의 청룡 끝자락에 해당하고, 원창고개를 넘어 춘천 시가지로 통하는 동쪽 길가에서 관문역할을 한다. 이 산은 ‘아내산’이라는 별칭도 있다. 동쪽 대룡산에서 본 안마산은 말안장처럼 보이는 반면, 북쪽 봉의산에서 본 모습은 만삭이 된 임산부가 누워 있는 형상이다. 이런 연유로 불임 또는 난임인 여성이 ‘아내산’의 임산부처럼 보이는 곳으로 이사한 후 아이를 순산·다산한다는 사연이 구전되고 있다. 산이나 자연은 보는 각도에 따라 그 기운이 변하니 주관적이다. 그래서 풍수적인 해석을 할 때는 오로지 남의 시야가 아닌 나의 시각으로 자연을 보아야 한다. 이 도시의 동남 지역 사람들은 출세하여 말 타는 꿈을 꾸고, 북쪽 지역 사람들은 ..

혈처의 새생명

일주일 전 경기도의 제자 김 선생 집을 방문하였다. 김 선생이 “참 신기한 일 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지난가을 뒷 뜰에 소점 해주신 혈처에 나무 가지를 꽂아 주셨는데, 고사목에서 올봄에 꽃이 피고 새싹이 나고 있네요. 잘 키워볼까 합니다. 그 나무는 삽목이 안되고 생육 조건도 까다로운데... “라고 한다. 문득 옛날 고승들이 꽂아 놓은 지팡이에서 움이 터 고목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기록들이 떠오른다. 그냥 야사로 여겼는데, 사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만물은 불균형한 기운(오행)을 가졌는데 그 기운을 혈에서 보태고 덜어내 균형된 기운을 가진 생명체로 왕성한 생육을 하도록 한다. 따라서 유독 왕성하게 잘 자라는 나무는 혈처에 자리하는 경우가 많다. 이 좋은 기운을 옆에 두고도 지나치고 엉뚱한 장소..

우두산 소슬묘의 기원

2018년 하계 휴강기간 중 KBS 풍수 반원들과 함께 춘천시 우두동에 있는 소슬묘를 처음으로 답산하였다. 춘천의 본래 지명은 ‘소머리’라는 기록이 있다. 소머리 고장을 한자로는 우곡성(牛谷城)인데 이 명칭이 백제 초기부터 사용되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이 있다. 우두산(해발 133m)은 소의 머리 형국이라 하고 하늘에서 내려온 천우(天牛)가 강을 건너는 모양새로 황우도강형(黃牛渡江形)의 천하 명당이 있다고 전해온다. 이런 연유로 춘천의 상징동물을 天牛(하늘소)라고도 한다. 춘천의 북쪽에서는 죽엽산 오봉산 용화산을 거친 산줄기가 우두 평야에서 멈추었고, 북에서는 율문천이 흘러 동북에서 흘러오는 소양강과 합류한 후 우두산을 감싸고돌아 다시 북한강과 합류하는 수세이다. ​ 황우도강형인 우두산의 정상부에는 ‘..

민영휘 묘와 민성기 가옥

4월 세 번째 KBS 문화센터 현장 강의로 민영휘 묘와 민성기 가옥을 답산하였다. 민영휘(閔泳徽, 1852-1935)는 조선 말기 문신으로 친일 활동을 하였으며, 1894년 동학운동 때 청나라 군벌 위안스카이에게 지원을 요청, 혁명군 토벌을 기도하였다. 천일은행(天一銀行)과 휘문 학교(徽文學校)를 설립하였다. 나름 탁월한 재간으로 여흥(驪興) 민 씨의 거두로서 매관매직과 가렴주구로 조선 말기 최고의 재산가가 되기도 하였다. ​ 민영휘 묘는 춘천의 소조산이며 주산인 대룡산에서 북쪽으로 출발한 주맥이 명봉을 거쳐 돌아보며 만든 회룡고조혈 (回龍顧祖穴)이고, 장학리 일대의 주산은 구봉산이다. 혹자는 민영휘 묘를 춘천 일대 최고 명당으로 꼽기도 하는데, 아마도 당시 유능한 풍수사로 하여금 신후터를 물색하였을 것..

효순사(孝順砂)와 귀사(鬼砂)

1453년(단종 1년) 수양대군이 선왕 때부터 원로를 지낸 신하들을 없애고 스스로 정권을 잡은 계유정난(癸酉靖難)이 있었다. 당시 안평대군을 중심으로 김종서와 황보인 등은 수양대군의 야심에 대항하지만, 오히려 모반으로 몰리며 죽임을 당하게 되고, 이 사건으로 황보인과 외척 관계에 있던 해동 처사 노유근이 은신처를 찾던 중 1454년 청주 가산리 원골 마을로 피신 오면서 교하노씨 청주 입향조가 되었다. 아직 이른 봄날, 해동 처사 노유근 선생의 묘소를 둘러보았다. 묘좌유향에 신파로 정혈처에 든 묘이다. 청룡이 5~6겹씩 감싸고 내백호도 가까이에서 유정하게 혈처를 감싸는데 3~4겹으로 또다시 혈처를 감싸고 있다. 용이 귀성 부근에서 혈처를 향해 크고 넓은 용맥을 만들었다. 용맥의 흐름을 바꾸는 옹사가 있으니..

춘천 박씨 시조 문의공묘

의 군현 지지 내용에는 춘천을 본관으로 하는 최, 박, 신(辛), 허의 성씨가 있다는 기록이 있으나, 오늘날 춘천 일대에서는 춘천 박씨 이외에는 그 맥을 잇지 못하는 듯하다. 또한, 춘천 지역에 시조묘나 중시조-쇠퇴한 가문을 다시 일으킨 조상-묘를 조성하여 지금까지 유택을 유지하는 성씨는 아마도 서면 방동리의 평산 신씨와 이곳 신북읍 발산리의 춘천 박씨이다. 그 외의 성씨들도 오래전에 시조 선산을 조성하였으리라는 추측이지만, 전래되는 자료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 둘의 차이는 아마도 묘터가 자손을 번성시킬 수 있는 명당이거나, 절손 또는 타향으로 쫓겨나는 비명당이나 흉지 아니겠는가의 여부로 풍수사들은 그 원인을 추론한다. 그만큼 시조묘는 성씨의 흥망을 좌우하는 풍수적인 요인이다. 문의공 묘역(후방 숲 언..

엘살바도르의 풍수지리 소고

(요청에 의하여, 이 자료는 '엘살바도르'측에 제공한 풍수적인 국가 발전 방안을 제안한 내용이다.) 1. 엘살바도르 최고봉은 휴화산인 산타아나(2,381m)이고 1946년 폭발이 있었다. 산타아나 화산(©Google map) 2. 풍수지리의 이치 첫째, 풍수(風水)는 바람과 물을 다루는 기술인데, 물을 더 중시하여 “풍수법은 물을 얻는 것이 제일이다”라는 격언이 있다. 즉 물을 얻는지 여부로 국가의 존망을 가늠할 정도이다. 풍수에서는 움직임이 없는 산을 여성에 비유하여 ‘음(陰)’이라고 하고, 물길, 평지, 도로 등은 움직임이 활발하니 남성에 비유하여 ‘양(陽)’이라 한다. 동작이 없어 발현이 안되고 있는 ‘음’의 산을 ‘양’인 물길이 움직임으로 일깨우니, ‘음’의 탤런트가 비로소 발현되기 시작하는 이치..

춘천 명당 강원도청터

신년 맞이 간산을 KBS 풍수반 여러분과 다녀왔습니다. 꽤 오래 춘천에 거주하시면서도 춘천의 진산인 봉의산을 오르지 못한 분도 있고 저 역시 초행길이었습니다. 봉의산이 유정하게 품고 있는 기슭에는 세종호텔, 강원도청, 춘천시청이 있는데, 시청은 혈권(穴圈)에서 벗어난 형국이고 도청터는 구한말 유사시 피난 궁궐이 있던 자리로 황제가 머물만한 대명당(大明堂)이고 그 위의 세종호텔은 봉의산이 가슴에 안고 있는 대귀지(大貴地)입니다. 그 때문인지 이 호텔은 역대 대통령들이 머물던 곳으로 유명한데, 대통령이 되기 전에도 머물러 기운을 받아갔고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원기 충전 삼아 이곳에 온다고 합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박근혜 대통령도 이곳을 다녀갔다고 합니다. 춘천을 빙 둘러..

도봉산 필통사(筆筒砂)

지난 목요일 강의 후 전철 차창가의 도봉산 모습을 멀리서 담았습니다. 풍수지리에서는 이 모습을 '필통사(筆筒砂)'라고 하는데, 옛날 선비 탁자에 놓여있는 필통에 여러 자루의 붓이 꽂혀있는 형상입니다. 필통사가 보이는 곳에서는 걸출한 문인이나 학자가 난다고하니, 욕심 같아서는 재물이 많이 들어오는 반 타원형의 부봉사와 함께 겸비된 조망이면 재물과 학식을 겸비하게되니 더없이 좋으리라 봅니다. 다만 너무 멀리서 보이면 그만큼 발흥이 약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