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이야기(칼럼)

효순사(孝順砂)와 귀사(鬼砂)

풍수명인 2019. 3. 13. 20:17

1453년(단종 1년) 수양대군이 선왕 때부터

원로를 지낸 신하들을 없애고 스스로 정권을 잡은

계유정난(癸酉靖難)이 있었다.

당시 안평대군을 중심으로 김종서와 황보인 등은

수양대군의 야심에 대항하지만, 오히려 모반으로

몰리며 죽임을 당하게 되고,

이 사건으로 황보인과 외척 관계에 있던

해동 처사 노유근이 은신처를 찾던 중

1454년 청주 가산리 원골 마을로 피신 오면서

교하노씨 청주 입향조가 되었다.

아직 이른 봄날, 해동 처사 노유근 선생의

묘소를 둘러보았다.

 

묘좌유향에 신파로 정혈처에 든 묘이다.

청룡이 5~6겹씩 감싸고 내백호도 가까이에서

유정하게 혈처를 감싸는데 3~4겹으로 또다시

혈처를 감싸고 있다.

 

용이 귀성 부근에서 혈처를 향해

크고 넓은 용맥을 만들었다.

용맥의 흐름을 바꾸는 옹사가 있으니,

횡룡입수(橫龍入首)로 귀사(鬼砂)가 뒤쪽에 붙어서

혈을 감싸주고 있으며 혈처를 향하는

넓고 큰 용맥의 흐름을 만들었다.

특이한 점은 귀사와는 별도로 효순사(孝順砂)가

혈처를 거듭 감싸는 형세로 한 치의

허술함도 없을 법한 음택지이다.

 

혈에서 다섯 번째 좌청룡을 안산으로 하였는데

좌선하는 반면, 혈에서 뻗은 줄기는 우선하니

태극으로 음양이 교합하는 명당이다.

 

청룡의 유정함으로 장손 발복 이외에,

내백호도 가까이에서 혈을 감싸니 차남이나

여손의 발복도 있음을 추측해본다.

 

한가지 옥에 티로 보이는 점은

아래 제실이 묘의 향과 틀어진 결과

건물의 모서리가 혈을 향하는 ‘살(殺)이

되고 있음이다.

 

바로 뒷산 너머 청주 한씨 시조 묘가 있다.

묘택의 호불호를 떠나 2014년 기준 성씨 중

10위에 642,992명의 자손이 있다.

반면, 교하 노씨는 132위에 53,203명의

종원이 있다.

묘 위치가 비교적 평지에 가까운 청주 한씨는

손(孫) 발복에 유리하였겠지만, 교하 노씨는

묘가 상대적으로 높아 손보다는 귀(貴) 발복의 

영향이 있었으리라는 추측을 해본다.

비교적 적은 수이지만, 노태우 전 대통령과

현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교하 노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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