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이야기(칼럼)

풍수지리상의 여성 상위 2

풍수명인 2010. 3. 19. 23:44

2009년 12월 08일 (화)

조선의 11대 왕 중종의 아홉 부인 중 여섯 번째인 창빈 안씨는 안산 안씨로, 별로 내세울 바 없는 어느 한미한 집안에서 태어나 아홉 살의 어린 나이에 내명부 궁인으로 입궐하였다.


그러나 후일 그 보잘것없는 출신 가문 배경이 오히려 명문 세력가 출신의 궁내 여인들 누구와도 경쟁과 다툼이 없이 잘 화합할 수 있는 장점이었으며, 단정하고 온화하며 예의 바른 근검한 성품으로 궐내에서 덕망이 높았다. 얼마나 근검하였는지 그녀가 죽고 난 이후 그 자식인 덕흥군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러한 연유로 창빈 안씨는 생시에 중종의 총애를 받았지만, 내명부 정삼품 품계인 소용(昭容)의 지위에 머물렀으며 사후에 손자인 선조 대왕이 내명부 정일품 “빈(嬪)”이라는 첩지를 추봉하였고, 경기도 양주 장흥에 묻혔으나 자리가 흉지라 하여 지금의 자리에 이장하였다. 그리고 원래는 후궁의 묘를 “릉(陵)”이라 하지 못하나 이를 “동작릉”이라 하였다.

문정 왕후는 창빈을 가장 총애했는데 중종의 다른 후궁들과는 달리 창빈이 그 당시의 어떠한 정치적인 상황에도 휘말려 들지 않고 후궁의 도리를 지키려 노력했던 점이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다. 또한, 창빈의 온화함 때문에 문정왕후의 아들인 명종은 뒤를 이을 후사가 없자 창빈의 손자인 하성군(선조)으로 후사를 잇게 하였으니, 그녀의 덕망은 후손으로 하여금 세상 무엇과도 바꾸지 못하는 왕위까지 얻게 하였다.

선조 이후로 조선 왕조가 끝날 때까지의 모든 왕이 창빈 안씨의 후손으로 사후 그녀의 영화가 실로 타의 추종을 불허 한다 하겠다.

필자의 견해로는, 창빈 안씨의 묘가 동작동 국립묘지의 주혈(主穴)을 점하고 있다고 본다. 동작(銅雀)이라는 지명은 오래전부터 사용되었는데 공작을 뜻하는 “작(雀)”자로 보아 범상치 않은 대 명당임을 짐작할 수 있다. 
 

 


혹자는 동작동 국립묘지 터를 향해 한강 물이 쏘듯이 들어오는 수세와 주위에 특히 큰 산(봉)이 없어 난잡함을 그 흠으로 설명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해당 혈처가 상당한 거리로 떨어져 있어 그 수살(水殺)을 완충시키고 산이 잘 에워싸는 지형을 갖추어, 역대 여러 조선 왕릉을 능가하는 상급 명당이라고 판단한다. 더구나 창빈 안씨는 그 혈심에 정확하게 매장되어 있어 그 발음이 대단하지 않았나 싶다.

여기에서 한 가지 언급하고 싶은 점은, 여러 왕릉을 관찰해 보면 혈심을 옆에 두고 일부러 피하여 쓴 듯 한 묘들이 의외로 많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당시 국지사(國地師)의 실력을 의심하기에는 무언가 석연치 않다. 당파 싸움으로 말미암은 국지사 매수설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외부 세력 개입을 추측해 볼 수도 있겠다. 그만큼 명당 혈을 발견하고도 실제 망인을 혈처에 장사 지내지 못하면 발음이 현저히 감소하는데 음택에서는 대단히 중요시하는 점이다.

혹자의 창빈에 대해 또 다른 견해로, 그 시대 그녀가 굴복과 순종의 상징이었다고 혹평할 정도로 생전의 삶이 권력이나 세도와는 전혀 무관하였으나 사후에도 이어지는 운명에서는 정반대로 바뀌는 양상을 보여 주고 있다. 사람은 죽어서도 생전의 성품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창빈이 영면하는 곳이 대명당이기도 하지만, 생전에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한 그녀의 성품이 사후에는 극진한 대우를 받았을 것이라는 상상도 해 본다.

이승과 저승에서는 서로 바뀌는 것들이 많다. 결혼식에서의 신랑과 신부, 그리고 산소 봉분(쌍봉의 경우), 제사상 윗자리 등 우리가 보는 시각으로 왼쪽이 상석이다. 이를 풍수에서의 시각으로 보면 오른편이 상석이다. 세상에서는 객관적인 사물판단을 하지만 풍수와 관련해서는 본인의 주관적인 시각을 사용한다.

우리가 사는 이승에서 음양(陰陽)을 분류하면, 산이나 언덕과 같이 높은 곳, 급경사, 좁고 날카로움, 굴곡이 많음 등은 양(陽)으로, 물이나 평지, 완경사, 모나지 않고 부드러움 등은 음(陰)으로 구분한다. 그러나 풍수지리에서는 음양의 성상이 정반대로 바뀐다. 즉 부드러움은 양이요, 날카로움은 음으로 분류한다. 특히 하늘을 여자로, 땅을 남자로 함이 풍수에서의 음양의 이치이다.

이제까지 우리는 날카로움에 높은 지위(上位)와 힘까지 장악하는 여유롭지 못하고 포용력 없는 약육강식의 장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점은 부드러움을 우선시하고 강함을 압도하며, 약함을 배려하는 멋있고 여유로운 인성을 갖춤에 있지 않나 싶다. 그리하여 지상 선계를 이루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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