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이야기(칼럼)

풍수지리상의 여성 상위 1

풍수명인 2010. 3. 19. 23:39
2009년 11월 28일 (토)

요즈음 정치적, 사회적 노력의 적지 않은 부분을 남녀평등사회 구현에 할애함을 쉽게 볼 수 있다. 행정기구 내에 여성부가 설치되었는가 하면, 얼마 전 대법원에서는 문중 재산을 출가 여부를 불문하고 여자 자손에게도 균등 배분하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어디 그뿐이랴, 아직도 우리에게 낯익은 ‘호적등본’이라는 용어는 충분한 의견 조율 과정도 없이 ‘가족관계등록부’라는 생소한 이름으로 다가와 어쩌다 구청에 등본 발급받으러 갔다가 민원실에서 어리둥절 우왕좌왕하는 영락없는 촌놈 꼴을 면하기 어렵게 한다. 따라서 호주라는 개념도 없으며 자기의 성을 자녀의 이름 앞에 붙이는 특권도 황망히 버려야 할 때이지 않나 싶다.

혹자는 남녀평등 내지는 남녀 간 역할이 바뀌는 현상을 말세적이라 하기도 하지만 이는 극히 수구론자적인 공허한 주장일 뿐으로, 과거 고려 시대에는 완연히 여성 상위 분위기가 대세였으며 이 영향이 조선 초기에까지 이어져 왔음을 여러 사료에서 볼 수 있다.

이 시대에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한다 하면 처가행을 의미하였으며 사위가 장인과 장모의 지시를 받들고 사망하면 딸을 재가시키기도 하였으며 딸 가진 사람이 호령하며 사는 사회적인 풍조를 이루었다. 특히 그 시대의 모계사회적인 면을 자주 보게 된다.

여기에서 풍수지리를 연구하다 보면 조선 초기의 양천 허씨 부인과 조선 11대 왕 중종의 후궁 창빈 안씨 이야기를 필히 접하게 된다.

양천 허씨는 그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여 커다란 후손 업적을 쌓은 인물로서, 태조 때 대사헌을 지낸 허응의 딸로 태어나 광산 김씨 김문과 혼인을 하였다. 과거에 급제한 김문은 어린 나이에 한림원의 벼슬을 하다가 돌연 세상을 하직하였다. 당시 허씨 부인은 안타깝게도 17세로 청상과부가 되었고 친정 부모는 당시의 풍조대로 딸의 신세를 한탄하며 적당한 개가처(改嫁處)를 알아보고 다녔다. 이를 눈치 챈 허씨 부인은 그 길로 아들 김철산을 데리고 몰래 개성을 떠나 지금의 논산 고정리까지 먼 길을 걸어서 시댁으로 내려와 시부모를 모시며 광산 김씨 자손들을 극진히 키웠다.

허씨 부인 사후에 이러한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자 세조는 마을 입구에 정려(旌閭)를 세워 세상의 귀감으로 삼았으며, 허씨 부인은 정1품인 정경부인으로 추증(追贈) 되기도 하였다.

그 어머니의 굳은 절개에 보답하듯 유복자 김철산은 조선 역사에서 수많은 기라성 같은 걸출한 인물들을 후손으로 배출하였는데, 그 대표적 인물이 조선 예학의 거두 사계 김장생과 그의 아들 김집으로 사후에 해동 18현에 추앙되어 공자를 모신 사당인 문묘(文廟)에 배향되었으며 역시 문묘에 배향된 송시열과 송준길의 스승이기도 하다.

김국광은 병조판서 재직 시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고 좌의정을 지내며 경국대전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김익희는 대제학과 이조판서를 지낸 명신이자 대학자였다. 김만중은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암행어사와 대제학을 지내고 한글 소설인 <구운몽>, <사씨남정기>, <서포만필>을 지은 국문학의 선구자이다.

김천택도 우리나라 최초의 시가집인 청구영언을 지어 지금도 국문학의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이외에도 판서와 삼정승 등 벼슬을 지낸 후손이 여럿 있다. 특히 김만기, 김만중 형제 대제학 그리고 김만기, 김진규, 김양택 3대 대제학을 배출하였는데 이를 문중의 긍지와 자부심으로 삼고 있다.

광산 김씨는 이미 고려 시대부터 빛을 내기 시작하여 조선 시대에 이르러 한층 가문의 영광을 더하였다. 여기에는 사계 김장생의 7대조 할머니 양천 허씨의, 당시의 시대적 흐름에 합류하지 않은 역할이 많은 밑거름이 되었다. 또한, 자기 소신을 굽히지 않는 진정한 여성 상위가 무엇인가를 후세에 일깨워 주었다고 본다.

                         고정리 광산 김씨 묘역

고정리의 고정산 기슭 광산 김씨 문중 묘역에는 사계 김장생 선생과 양천 허씨 부인 묘를 비롯한 여러 정승과 판서의 묘들이 있는데 주변 산세가 부드럽고 수려하게 사계 선생의 묘를 향해 조응하는 지세로 보아 걸출한 후손들을 배출한 근본이 되었을 것이라는 풍수적인 고찰을 해 보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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