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신(緣神)감응론

장례문화에 대한 편견(연신감응론 5)

풍수명인 2010. 6. 7. 11:43
2010년 01월 25일 (월)

요즈음 사회 지도급 인사들 사이에 ‘넛지(nudge) 이론’이 화제가 되고 있다. 또 일부 외국에서는 이를 정책에 반영하여 정부의 '현명한 선택 설계'를 국민이 자연스럽게 따르도록 시도하는 추세이다. 팔을 잡아끌어서 어떤 행동을 하게 하는 적극적인 간섭이 아닌, '팔꿈치로 살짝 찌르는 정도의 부드러운 개입' 또는 '단지 팔꿈치로 툭 치면서 어떤 행동을 유도한다.'라는 의미이다. 사람들이 흔히 부적절한 선택을 하는 이유는 갖가지 편견 때문이라며, 현명한 선택을 하도록 부드럽게 유도하되, 선택의 자유는 여전히 개인에게 열려 있는 상태라는 말이다.

가령, “내일 투표할 거냐?”라고 묻는 것만으로도 실제 투표율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암스테르담 공항에서 소변기에 파리 모양의 스티커를 붙여 놓는 아이디어만으로도 소변기 밖으로 새어 나가는 소변량을 80%나 줄일 수 있었던 사례가 있다. 화장실을 깨끗이 사용하라는 경고나 파리를 겨냥하라는 문구를 붙여 놓았다면 그 효과는 현저히 감소하였을 것이다. 이제는 우리의 오랜 장례 풍습에 관하여 부드러운 ‘넛지’를 시도해 본다.

효와 발복(發福)

건강한 사람의 기운은 음양이 조화를 이룬 상태이며, 사후에 양기(陽氣)인 ‘신(神)’과 음기(陰氣)로서 백(魄)에 담긴 ‘귀(鬼)’로 나뉜다. 귀(=神)는 나약하여 대개 자연(신)의 일부가 될 뿐이다. 신계에서는 약한 존재이지만 “지금 매장된 곳이 흉지이니 좋은 자리를 구하여 속히 이장을 해달라.”라고 호소하기도 한다. 때로는 그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자손으로 하여금 화(禍)를 당하게도 하는 그런 존재이다. 또한, 귀(鬼)는 대개 자연신과 동화(同化)되어 있어 본래의 정체(正體)가 분명하지 않다. 우리가 산자락에 묘나 집이 아닌 다른 구조물을 설치한다 해도 마찬가지로 그곳의 자연신과 연결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다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제까지 백(魄)이니 귀(鬼)니 혼(魂)이니 신(神)이니 하는 말은 우리의 편견 탓에 다소 부정적인 이미지로 인식되어 왔다. 이에 대하여 실학자 성호 이익선생께서 기술한 바를 요약한 또 다른 내용으로, 신이란 원래 양명(陽明)한 성상의 것으로서 신령스럽고 영험함으로 지극히 밝은 ‘신명(神明)’의 경지에까지 이를 수 있는 존재라고 하여 그 고귀함을 일러두었다.

귀(鬼)는 땅속에서 처해 있는 모습, 즉 유골 또는 기타 형상의 기체(氣體)를 가지고 있는 반면, 신은 생시의 생김새와 의지가 있으니, 진정한 조상은 양(陽)의 기운을 가진 ‘신(神)’이다. 이제는 조상의 산소가 “효(孝)”와는 무관하다는 점을 눈치챌 때이다. 산소를 명당에 쓰고 정성스럽게 관리한다 함은 “발복(發福)”의 문제일 뿐이다.

장례 문화에 대한 편견

이제까지 전래하는 풍수와 장례에 관한 지식은 왜곡되고 과장된 내용이 많아 문제를 안고 있다. 또한, 여기에서는 ‘기와 신’을 대상으로 하니 과학의 시각에서는 이해가 어렵다. 바꾸어 말하면, 과학 수준이 거기에 미치지 못한다고 하겠다. 그 중 하나로 음택이 양택보다 상대적으로 발음이 크고 빠르다 하여 양택 분야를 등한시하고 묘로 쓸 명당자리 구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이에 관하여 역사 속의 사례를 살펴보기로 한다.

안동 시내에서 임하댐 방향으로 가다 보면 보물 450호로 지정된 의성(義城) 김씨 종가댁이 있다. 처음 이곳에 터 잡고 집 지은 김만근의 증손자 다섯 명이 모두 과거에 급제하였다 하여, 이 집을 ‘오자등과댁’(五子登科宅)'이라 부른다. 그 외에도 과거 급제자 25명과 생원과 진사가 64명이 나왔다는 이유로 조선시대의 양택 명당 모델이다. 또한, 그 설계가 지혜로워 건축가들의 연구 대상이 되는 조선시대의 소중한 민가 건축 자료이다.


   
▲ 의성 김씨 종택 ⓒ(재)안동축제관광 조직위원회

전하는 바로는, 이 집에는 산방(産房)을 따로 두었는데 이 방에서 출생한 사람마다 과거에 급제하였다고 한다. 반면 다른 방에서 태어난 사람은 급제를 못하였으니, 출가한 딸들이 출산 때에는 친정으로 와 이 방에서만 아이를 낳으려고 했다고 한다.


종가에서는 타성바지에 지기(地氣)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고심하다가 결국에는 그 방을 대청 일부로 만들어 폐쇄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후로 더는 인물이 나오지 않으니, 할 수 없이 폐쇄했던 산방을 복구하고 사용하게 하자, 다시 인재가 나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외에도 비슷한 예가 많으나 강조하는 바는, 좋은 집터가 될 수 있는 곳을 묏자리로만 사용하려는 편견을 교정할 필요가 있다. 확실한 점은 양택이 음택 못지않게 발음이 빠르고 크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그 자리에 집을 지으면 여러 사람이 자연의 좋은 기를 받게 되니 더없이 좋은 ‘넛지’아닌가?

또 다른 편견으로, 유해를 화장하면 조상과의 연이 끊어진다 하여 화장을 꺼리고 생장(生葬; 시신을 그대로 매장)을 선호한다는 관습이다. 또 혹자는 생장 시의 체질량과 화장 후의 유골의 체질량이 차이가 커 화장을 하면 상대적으로 발음이 현저히 줄어든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이런 생각은 잘못된 관점에서 비롯한 오해이다. 필자는 전편에서 이 오해를 바로잡기 위한 ‘암시’를 상당 부분 할애하여 기술하였다.

다시 상기하면, 비어 있는 가묘나 초혼 묘에서도 전혀 이상 없이 발음이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체백(體魄)이 유골이나 납골 상태 또는 그 어떤 상태로 있든지 발복의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미루어 굳이 비용이 많이 들고 자연 훼손이 심한 생장(生葬) 보다는 화장(火葬)이 훗날 벌초 등 관리하기에도 쉬울 것이라 함이 또 하나의 ‘넛지’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