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이야기(칼럼)

지붕과 색채의 오행

풍수명인 2010. 4. 10. 19:19

2010년 4월 10일 (토)

오행사상은 음양론과 더불어 우리의 일상에 알게 모르게 광범위하게 퍼지고 스며들어 있음을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보면 알 수 있다. 전편에서는 건축에 관련한 수(數)의 개념을 주로 살펴보았으며, 이 외에도 건축물의 지붕과 색(色)에 대한 오행적 의미를 음미해 보는 것도 흥미로움과 동시에 앞으로의 생활에 유익한 자료가 되리라 본다.


지붕과 오행


조선시대 한옥의 지붕은 맞배지붕, 우진각지붕, 팔작지붕이 주류를 이루었다. 맞배지붕은 펼친 책을 엎어 놓은 것처럼 정면은 사각꼴이고 완각(지붕의 옆면)은 삼각형으로 신이나 혼령이 머무는 사찰, 종묘, 사당의 지붕 형태로서 현대의 건물로는 천안의 독립기념관이 대표적이다. 우진각지붕은 네 면이 모두 같은 경사로 이루어져 있는 사다리꼴 정면과 삼각형의 옆면 모양을 하고 있는데 주로 민가의 지붕 형태였다.

 

                           맞배지붕 

 

                           우진각지붕 

 

조선 후기에 팔작지붕이 유행하게 되었는데 경복궁의 근정전 및 사정전과 침전인 강녕전, 교태전 등 주요 건물과 사대부가의 가옥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지붕 유형이다. 직사각의 양쪽 아래에 삼각형 모양이 붙은 부정형 네모꼴 두 면과 사다리 형태의 양 측면 그리고 삼각형의 양 완각으로 이루어진 가장 박잡(駁雜)한 모양을 하고 있다.

 

                           팔작지붕 

 

당시 궁궐 건축의 고급 기법으로서의 팔작지붕이 일반 사대부 가옥의 건축에도 하향 전수될 정도로 선호하였으나, 이를 오행사상과 풍수적으로 판단하면 부정형의 네모꼴의 토(土)와 삼각형의 목(木)의 기운이 혼란스럽게 섞여 있어 서로 극함이 가장 많은 흉한 형태이다.

 

오행의 수(數)에 있어서도 서로 대립할수밖에 없는 짝수 지붕 면을 가진 건축으로써 선인들의 기술과 오행 지식을 폄하하려 함이 결코 아닌 객관적 분석을 해 볼 따름이다. 따라서 조선 후기 이전의 맞배지붕이 사각형의 반듯한 모양으로 길한 상이라 하겠다. 그러나 지붕 면이 짝수임이 결함이니, 둥근 형태에 가까운 초가지붕은 면이 하나인 홀수로서 기의 뭉침과 순환에도 유리하다 하겠다.

 

                           초가지붕

 

한편, 궐내의 주요 건물의 지붕 위에 여러 동물이나 기타 형상을 한 잡상(雜像)은 좋지 않은 기운이 내부를 범접함을 막고자 하였다. 경복궁의 근정전과 근정문 및 경회루 등 조선시대 왕과 관련한 궁궐의 중요한 건물의 내림 마루에는 잡상(雜像)이라고 일컫는 장식물이 3개 또는 11개까지 홀수로 배치되어 있다.

 

특이한 점은 조선 말기에 왕권 강화의 상징이었던 경회루 지붕에는 잡상을 11개 두었으며, 또한, 대한제국의 법궁(法宮)인 덕수궁 중화전은 짝수인 10개의 잡상이 서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의도가 무색하게 경복궁과 조선 왕조는 수모와 재난을 유난히 많이 겪었던바, 이는 단순한 상징적인 의미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잡상

 

건축과 색(色)


단청(丹靑)은 오행설에 근거하여 기본색인 적색, 청색, 황색, 백색, 흑색의 5색을 사용하여 규칙적인 문양을 그려 넣는데, 궁궐 건축에 있어서 단청은 필수 작업과정이다. 단청을 하는 목적은, 나무 재질의 기둥 표면에 칠로써 막을 만들어 습기가 차거나 썩지 않도록 하여 그 수명을 연장하고, 나무의 균열이나 옹이 등 결함을 감추기도 하며, 액을 퇴치하는 등 각 색채가 의미하는 주술적인 효과를 도출하기도 하고, 일반 민가에서의 단청 사용을 못 하게 함으로써 상대적으로 궁궐의 권위를 부각시키려는 효과를 내기 위함이었다.

 

단청에 대한 오래된 자료로서, 신라시대에서는 최상위 계급인 성골(聖骨)계급에서만 5색을 사용할 수 있게 하고 차상위의 진골(眞骨)계급부터는 사용을 금하였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의 ‘옥사조(屋舍條)‘에 전해져 내려온다. 바꾸어 말하면 궁궐에서만 단청을 하였다는 의미이다. 그 후로 조선시대에서는 왕궁과 관청 그리고 사찰에서 단청을 사용하고 일반 건축에서는 금하게 하였다.

 

건축물에 오행사상이 반영된 바와 같이 단청도 역시 오행설(五行說)에 근거하여 발생하고 전래하였다. 각각의 성질과 상징을 보면, 흑색(黑色)은 물(水)로서 북방(北方)과 겨울(冬), 적색(赤色)은 불(火)이고 남방(南方)과 여름(夏), 청색(靑色)은 목(木)이고 동방(東方)과 봄(春)을, 백색(白色)은 금(金)이요 서방(西方)과 가을(秋) 그리고 황색(黃色)은 흙(土)이고 중앙(中央)과 토용(土用)에 해당한다.

 

이 다섯 가지 기본색을 배합하여 중간색을 만들고, 다시 5색과 중간색을 일정한 규칙에 따라 배색하게 되는데 단청은 우주 삼라만상의 이치를 표현한다고 하겠다. 또한, 궁궐의 모든 기둥이 적색으로 왕권의 존엄함을 나타냄과 동시에 적색은 악귀를 쫓는 효과가 있다고 하여 붉은색을 가장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조선의 궁궐에서 발견되는 황기와를 색채적인 오행설로 풀이하면, 황색은 중앙과 중심을 뜻하니 황제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조선의 왕들이 나라를 황제국으로 격상시키려는 시도를 은연중 해 왔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단청의 배색 비율은 그 시대가 처한 환경에 따라 변하여 왔다고 보는데, 고려시대와 조선 초기에는 주로 붉은색이나 등황색 계통을 많이 사용하였으나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푸른색 사용이 현저하게 증가하였다. 푸른색은 풍수설로 청룡에 해당하고 장손(큰아들)과 적자(嫡子)의 길흉에 관계가 밀접하며, 오행사상으로는 동쪽에 해당한다.

 

                                  화엄사의 단청 

 

조선 왕조는 유독 장자가 왕위를 승계한 예가 적었으니, 27대 왕 중 7명의 맏아들만이 왕에 오른 반면, 둘째 왕자중 12명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장자(長子)로서의 왕은 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현종, 숙종, 경종인데 그나마 숙종을 제외한 이들 대부분이 요절하였으니 조선은 장손의 수난시대였다.


이의 한 원인으로, 당시에는 왕세자의 나이가 9세 이상만 되면 세자비와의 합궁(合宮)을 시작하였으니, 왕세자의 지나친 조혼(早婚) 풍습으로 건강하고 정상적인 세손의 출생을 기대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을 것이다. 또한, 풍수적 이치로는 경복궁의 자리에서 큰아들에 해당하는 낙산이 미약한 반면, 차남의 길흉을 관장하는 인왕산의 기가 강하니 이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이다.

 

철저한 장유유서(長幼有序)의 유교 국가였던 조선 왕조가 개국 이후 줄곧 벌어지고 있던 이런 현상을 속수무책으로 방관만 할 수 없었을 것이니, 후기에 이르러서 경복궁의 풍수지리적인 취약 부분을 보완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장자의 기를 북돋우는 푸른색을 궁궐 단청에 많이 사용하였다고 본다.


색채를 포함한 각 분야에서의 궁궐 건축은 국민 일상의 유행을 선도하는데 지대한 역할을 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영향으로 현대의 사찰이나 민간에서도 푸른색의 사용 비율을 높인 단청을 많이 사용하고 있음을 흔히 볼 수 있다. 아~ 우리나라의 장손들이여! 동쪽으로부터 퍼져 오는 싱그러운 봄기운을 온 몸에 담고 청와대의 푸른 기와 빛처럼 무성하게 성장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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