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이야기(칼럼)

자연미인 부석사

풍수명인 2010. 5. 24. 16:33

태백산맥에서 소백산맥으로 분지되는 경상북도 영주 땅의 봉황산 중턱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의 하나인 부석사(浮石寺)가 있다. 명당인 터를 잡은 사연이 특이하고, 목조 건축기법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자연미를 간직하고 있어 마치 화장을 하지 않은 여인의 빼어난 미모를 대하는 듯하다.


의상대사가 신라 문무왕 16년(676년) 2월에 왕의 뜻을 받들어 창건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고려 때 지금의 규모로 중창되었다. 조선시대와 근대에도 건물의 중수와 중건 기록들이 있다. 부석사는 우리나라 화엄종의 종찰로 고승 의상에 의해 수천의 제자들을 배출하며 그 법통을 지켜져 온 전통적인 사찰이다.
 

<송고승전(宋高僧傳)>의 부석사 창건과정을 보면 그 터가 대단한 길지로 보인다. 의상이 중국에서 유학한 후 귀국선에 오르자 그를 사모한 ‘선묘낭자’가 바다에 뛰어들어 용이 되어 의상을 따르며 지키게 되었다 한다. 귀국 후 의상은 ‘화엄경’을 펼칠 곳을 두루 살피던 중 이곳을 발견하였으나 수백의 잡귀들이 이미 차지하고 있어 곤경에 처하자 용이 된 선묘가 재차 거대한 바위로 변해 허공에 뜬 채 위협하여 이 무리를 물리쳤다 한다. ‘뜬 돌’이라는 부석사라는 이름이 여기에서 유래하였다.


공간 창출의 절묘함

흔히 절이나 궁궐은 단청하여 그 아름다움을 가공하나, 부석사의 건물들은 무단청으로 그 속살을 드러내며 자신 있는 매력을 발산하며 주변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또한, 경사가 급한 산자락을 아홉 개의 석축을 쌓아 안정감 있는 공간으로 창출하고 그 위에 건물들을 배치하였다. 석축 또한 생김새 대로의 크고 작은 수많은 돌들을 각기 개성을 살려 끼워 맞춰 하나의 통일된 축조물을 탄생시키는 미적 감각을 엿볼 수 있다.

                           안양루와 석축                                   

범종각이나 안양루의 밑을 통과하여 계단을 오를 때마다 별천지인 듯 또 다른 공간이 다가오는 절묘한 공간배치가 전혀 지루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눈앞에 펼쳐지는 마술을 보는 듯하다. 건물과 주된 통로의 배치에 있어서도 공간을 적절히 배분하여 자연과 어울리고 풍수사상에 적합한 설계를 하였다.

양택이론으로 보아, 우리가 흔히 ‘막다른 골목 집’은 피해서 살아야 한다는 말을 한 번쯤 들어 봤음 직하다. 골목이 그 길이가 길 때는 그 통로에서 생긴 기류가 강해져 살풍이 되고 막다른 집을 때리듯 불어대니 문이나 창문들이 소리를 내고 삐걱거리는 현상이 있어 사람 살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또 그 바람이 집안의 기를 분산시키고 흉한 기운을 몰고 오니 하등 이로울 것이 없다는 이론이다.


부석사의 첫 관문인 일주문에서부터 천왕문을 거쳐 범종각까지의 주된 통로가 일직선으로 뻗어 있지만, 안양문에서부터 좌측으로 20~30도가량을 틀어서 무량수전에 이르는 통로를 조성하였으니 소위 ‘막다른 골목 집’ 현상을 비켜선 풍수적 지혜가 엿보인다. 또한, 무량수전이 바로 앞 단아한 봉우리를 안산으로 굽어보도록 향을 하였으나, 그 아래 공간의 범종각에서는 그 봉우리가 높으니 안산으로 부적합한 지형 한계를 절묘하게 조절하였다고 본다.
 

건축양식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의 하나인 무량수전의 기둥은 안쏠림(엔타시스)방식으로 축조하였는데, 기둥을 수직으로 세우지 않고 사방에서 건물 중심부 쪽으로 미미하게 기울게 세워 지붕의 하중과 지진에도 견고하게 버티도록 설계하였다.


이 엔타시스방식은 기원전 4세기에 세워진 그리스 파르테논신전의 기둥에서 그 선례를 찾아볼 수 있다. 중앙을 향하여 기울어진 기둥들의 연장선이 4.5km의 상공에서 만난다는 계산결과가 있듯이, 이 신전은 거센 폭풍우와 지진에도 견고하게 버텨 왔으나 1687년 인위적인 충격(베네치아 군대의 포격)으로 상당 부분이 무너져 내려 현재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무량수전
                 

무량수전의 기둥은 또한 배흘림기법을 채용하였는데, 지붕 하중을 가장 많이 받는 기둥 중간 부분을 굵게 보강하고 직선 원통형 기둥에서의 상부가 넓어 보이는 착시현상을 교정하는 건축기술이다. 또한, 처마 끝 부분을 살짝 올린 귀솟음과 안허리곡(처마 끝을 중앙보다 더 돌출시킴)기법을 채택하여 우리나라 목구조 건축기술의 백미로서 그 섬세함을 인정받고 있다.


또한, 부석사 건물의 지붕은 맞배지붕과 팔작지붕을 혼용하였는데, 특이한 점은 범종각의 전면은 팔작지붕인데 반해, 뒷면은 맞배지붕으로 건축하여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각에 맞추어 건물이 경쾌하게 보이게 함과 동시에 개방감을 주는 배려를 잊지 않았다. 각 건물의 내부 천정도 크고 작은 모든 부재를 그대로 노출하여 그마다 스토리를 들려주고 강약을 보여줌과 동시에 답답함을 주지 않는 개방형 구조로서 결코 좁아 보이지 않는 공간을 만들었다.

                      무량수전에서의 전경과 범종각 
                         

무량수전의 입지


일주문에서 천왕문 사이를 기(起), 천왕문과 범종각의 공간을 승(承) 그리고 범종각에서 안양루까지를 전(轉)으로 하면, 마지막 무량수전에 이르는 공간은 결(結)이 되니 이곳은 부석사 전체를 결론하는 가장 중요한 위치이다. 이 건물의 중앙문을 열면 보통은 부처상을 정면 중앙에 배치하는데, 여기에서는 좌측에 안치하여 동쪽을 바라 보도록 하였다.


이 배치에 대하여, 우리나라와 중국의 방위 개념은 전면이 남쪽인 방위에 좌우가 각각 동과 서이다. 이와는 다르게, 전면 방위가 동쪽이고 좌측이 북방이고 우측이 남방인 불교발상지 인도의 방위 기준에 따랐다는 설이 있으나 설득력이 없다. 아미타여래좌상을 서쪽에 안치한 이유는 서방정토가 있음을 믿으며 아미타불 세계의 왕생을 구하는 방위적 의미가 있으리라 판단한다.
 

풍수에서 생기가 뭉치는 혈자리는 승금(乘金; 오행상 둥그런 금형이며 혈보다 위쪽에 있고 주위보다 높다. 혈자리로 물이 흘러들어오지 못하게 하며 흘러온 생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함.), 상수(相氺), 인목(印木; 승금에서부터 두 팔을 벌리듯 혈토를 감싸 안아 생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함.), 혈토(穴土)로 이루어져 있는데, 뒤편 산자락에 승금이 뚜렷이 보이니 무량수전 터가 혈처임이 한눈에 들어온다. 나머지 상수, 인목과 혈토는 터를 평토하고 그 위에 건물을 지어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무량수전 뒤의 승금      

생기가 감싸는 좋은 터에 세워진 무량수전이 오랜 세월에도 고고함을 잃지 않음이 오히려 당연함으로 다가온다. 세련된 매력과 부드러운 속살을 지닌 구름 위의 가인(佳人)께서, 아스라이 이어지는 태백과 소백을 굽어보는 금빛 석양 풍경을 뒤로하고, 아쉬움과 함께 속세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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