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이야기(칼럼)

윤회 속의 금수저와 흙수저

풍수명인 2022. 10. 9. 17:57

공원에는 흔히 느티나무를 식재하는데, 잘 자라기 때문이다.

그중 유독 왕성한 성장을 하는 나무들이 눈길을 끈다.

분명 고만고만한 어린 나무들을 식재하였을 터인데, 유난히 성장이

두드러진 나무 몇 그루를 담았다.

그 성장이 왕성한 나무들은 최근의 수저계급론으로 말하자면,

모두 금수저 혜택을 입고 있는 셈이다. 땅에서의 ‘금수저’ 자리는

혈(穴)자리이다. 

 

혈처라는 부모를 잘 만나서 누리는 행운이 우연일까?

모든 생명들은 윤회 속의 수없는 전생을 살아왔다. 각 전생을 살면서

악업(惡業) 또는 선업(善業)을 지으며 살아왔다. 선업을 쌓기는

어렵고 살기 위해 부득이 악업을 짓게 되는데, 그 행위의 결과가

후생(後生)에 대부분 살(殺)이 되어 ‘흙수저’의 고통스러운 일생을

보내게 된다. 혈처에 자리한 나무들은 전생의 악업이 타에 비해

적었을 것이다.

 

윤회의 굴레란,

(육의 죽음)--->(기생명체로 잔류)--->(기생명체의 죽음)--->(理)--->

(理+物=또 하나의 생)......

따라서 가축, 벌레, 초목, 어류 등 많은 생의 반복이 있어왔다.

윤회의 주체는 성리학에서의 ‘理’, 곧 ‘만물의 이치’이다.

이 理를 흔히 ‘영’이라고도 한다.

 

이 理(영)에게는 수많은 전생의 업에 대한 장부(대차대조표)가

기록되고, 그 결과, 대개는 그 채무(악업)를 상환해야 하는 빚쟁이

신세로 각각의 생을 고단하게 살 수밖에 없는 신세이다.

 

몸에 기체로 박힌 業을 묘사

 

우리 주위에 어떤 이는 지지리도 고생고생하다가 생을 마치는

경우가 있지만, 또 어떤 이는 세상에 못된 짓은 다하면서도

평생 풍족하고 떵떵거리며 살다 호화판 장례식으로 생을 마감한다.

이를 보며, 세인들은 “세상이 불공평하다”, “선하게 살면 복이 없다”,

“신은 죽었다”라고 말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의 삶의

기준을 삼기도 한다. 

 

각 전생에서 자신(理, 영)이 진 채무를 갚아야 함을 아는 것은

세상을 지혜롭게 사는 방편이다.

“이리도 살기 어렵고 고단한 세상살이가 전생에 지은 업

때문이로구나.”하고 생을 멀리 보고 스스로 위로하고

체념하는 사람이야말로 賢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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