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천을 보는 시각론

산천을 보는 시각론 (2)

풍수명인 2012. 6. 2. 17:31

다. 물형론의 한계

 

봉황은 긴 날개 중간마다 봉황 문양의 뭉침과 많은 깃털이 특징이니, 봉황 물형의 산은 좁아지다가 넓게 뭉치는 광협(廣狹)과 많은 산자락이 있는 형상을 말함인데 <사진 1>의 ‘봉황산’은 그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진 1>                                                                                 확대보기 - 사진 클릭

 

 

                     <사진 2>

 

<사진 2>는 우리나라 남부지방에 있는 ‘비봉산(飛鳳山: 날아오르는 봉황 형상)’인데, 날 짐승 형상임에는 이의가 없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 학, 꿩 또는 비둘기 등 다른 종류로 물형을 정하여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또 나르는 형상이 아닌 알을 품고 있는 형상(抱卵形)으로 해석한다 해도 무리가 없다. 아마도 조류 중에서도 봉황이 대단한 길조이고 날아오르는 기상에 걸맞은 큰 인물을 배출하고 싶은 그 지역 사람들의 바람을 반영한 결과이리라 본다.

 

이처럼 각자의 바라는 바 이해관계, 습득한 지식의 질과 양 그리고 관을 하는 수준에 따라 산천의 물형을 보는 결과가 다르게 나타난다. 또한, 초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정확한 혈처를 찾기가 거의 불가능하고 길흉의 판단이나 기가 뭉친 곳이 서로 다른 물형론의 한계를 드러낸다.

 

가령, 봉황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형상(飛鳳形)에서 혹자는 봉황의 머리가 바람을 헤쳐 나아가니 혈처라고 보지만, 날개에 힘을 모으고 긴장하니 봉황의 날개 부위에 기운이 뭉쳐있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신령스러운 잉어가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형상(靈鯉逆水形)은 물고기가 지느러미를 사용하기도 하고 꼬리를 움직여 유영하니 각자의 핵심처에 대한 관점이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같은 땅에 대하여 자신이 느끼는 물형의 종류를 무시하거나 아예 파악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옛 선인 등 다른 사람이 먼저 명명한 것을 맹종하는 선입견도 물형론을 더는 객관화할 수 없는 요인이다.

 

풍수 지식이 없는 사람은 언론 매체에서 산천의 형세를 물형으로 소개하는 자료들을 보고 흥미있고 쉽게 이해하지만 객관성 있고 체계적인 이론을 갖추지 못한 일종의 술법으로 여길 뿐이다. 하지만 실상은 물형론이 우리의 일상에 깊이 간여하여 있음을 알 수 있다.

 

물형론이 실생활에 반영된 예로, 서울의 안산(案山)인 남산은 서쪽 봉우리 모양이 누에머리 형상이라 잠두산(蠶頭山)이란 명칭으로도 전래하여 왔다. 누에는 뽕잎을 먹고 살기 때문에 남산의 지기를 북돋우기 위해서는 뽕 밭을 만들어 줄 필요가 있었으니 한강 건너 남산이 바로 보이는 사평리(沙平里) 모래땅에 뽕나무를 많이 심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그곳의 지명이 잠실(蠶室)로 바뀌게 된 유래가 있으며, 서초구의 잠원동(蠶院洞)이란 명칭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산업디자인계에서는 어떤 모양의 물체가 양질의 기를 발산하여 대중에게 좋은 이미지를 전달하는가, 반대로 어떤 모양과 색이 사람들에게 혐오감 등 부정적인 기를 전달하는지가 주 관심사로써 물형론과는 일맥상통한 분야이다. 두 분야 모두에서 모양이나 물형을 중요한 정보로 취급한다.

 

다만, 물형론에 비하면 산업디자인 이론은 한층 체계화되고 객관화된 정도가 월등하다. 달리 말하자면, 풍수지리의 특성상 물형론에서도 길흉화복을 추적 조사하여 불가시 영역과의 인과관계를 체계화하고 객관화하려는 시도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해야 하는 난공불락의 거대한 벽에 가로막혀 있는 현실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