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석우리와 대신면 하림리에는 “거지 허탕골”이라는 산으로 빙 둘러싸인 골짜기가 있다. 그 해학적인 명칭 때문에 듣는 사람이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는 지명이다. 얼핏 밖에서 보면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제법 큰 금당천과 큰 길이 있고 산맥이 빙 둘러쳐 있어 대명당과 넓은 터가 있을 것처럼 보인다.
지명
이곳에 관련한 지명이 여럿 있는데. “돌담이”는 옛날부터 돌이 많아서 이 돌을 날라서 농경지 둑을 쌓는 데 이용하였다 하여 부르는 이름이다. 또한, “석우리(石隅里)” 의 우(隅)란 한자는 ‘모퉁이 우’ 자로 자고로 이 지역은 돌이 많아서 돌을 피해 돌아서 다닌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그밖에 “담모랭이”는 그곳을 에워싸고 있는 산맥이 담처럼 조밀하게 둘러쳐 있으므로 생긴 지명이니 풍수적으로 바람을 잘 갈무리하는 지세로 볼 수 있다. 석우리에 있는 들판을 “곰실”이라 하기도 하는데 곰(熊)의 의미보다는 크다(大)의 뜻이 있어 큰 들판을 말한다고 한다.
거지 허탕골의 유래
이곳은 지형이 특이하여, 밖에서 보면 그 안쪽이 넓어 보이고 큰 마을이 있을 것 같아 보이지만 막상 안으로 들어가 보면 인가가 없으며 가축사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부근을 지나던 배고픈 거지들이 밖에서 보이는 지세에 잔뜩 기대를 걸고 밥술을 얻기 위해 동냥을 하러 안으로 들어갔으나, 허탕을 치고 나온다 하여 부르는 이름이다. 지세에 속아 스스로 택한 길이니 원망할 대상도 없다. 인가는 없고 배는 고파오니 어깨는 축 늘어져 누추하고 처량한 모습으로 되짚어 나오는 거지들의 실망스러운 모습을 연상하면 웃음이 절로 나오지 않겠는가.
거지 허탕골(네이버 지도)
수구
풍(風)과 수(水)
거지 허탕골에 관한 유래를 들은 터라 부정적인 인식과 함께 입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섰다.
청룡 자락의 일부 절비(折臂)-청룡이나 백호의 일정 부분이 꺾여 함몰됨-를 제외하면 듣던 대로 빙 둘러친 산 지형이 바람을 잘 갈무리하고 있었다. 다만, 입구 부분이 밖에서 불어오는 골바람을 막아주지 못함이 바람에 관한 결함이었지만, 그런대로 조밀하게 장풍이 되는 지형이다.
그러나 입구와 안쪽의 모든 평지가 권렴수(捲簾水)-앞쪽으로 물이 지속해서 흘러나가는 것. 즉 명당이 가파르게 되어 있어 재산이 탕진되고 주인이 일찍 죽어 과부와 고아가 생긴다-이니 사람이 지속해서 살기에는 흉지 중 흉지이다. 흡사 그 모양은 소주병을 기울여 금당천 냇물에 철철 흘려 보내는듯한 지형이다. 특히 물은 재물을 상징하니, 이런 연유로 이곳에 자리 잡은 사람마다 예외 없이 쫄딱 망해서 나간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따라서 풍수에서는 바람과 물에 대한 이치를 중시하는데 둘 중 어느 한쪽만 추구해서는 자리가 아니며, 바람길과 물길을 다 같이 충족시키는 지형을 골라야 한다
청룡 절비
역(逆)과 순(順)
세상에서는 순리대로 살고 세상과 거스르지 않는 삶이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한다. 산수동거(山水同去)란 산과 물이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니 기가 멈추어 모이지 않고 흘러가 버리는 흉지이다. 소위 “순(順)의 원리”이다. 거지 허탕골은 철저하게 순의 원리에 따른 지형이다.
그러나 풍수에서는 이와 같은 순의 원리를 철저히 배격하고 역(逆)을 지향한다. 풍수지리가 “역의 학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기를 흘려보내지 않고 모으고 붙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흐르는 물과 기를 주걱처럼 거슬러 막는 지형, 구곡수(九曲水)로 물이 급히 빠져나가지 않고 구불구불 흐르며 기가 모이는 수세, 물이 나에게로 서서히 흘러오는 창판수(倉板水) 등은 길사(吉砂)이다.
용호의 경권(競拳)
혈에서 보아 왼팔인 청룡과 오른팔인 백호 끝자락이 서로 마주치지 않고 교차하는 지세가 좋은 모양세다. 형제간, 자매간, 형제자매간 다툼이 없이 우애 있게 사는 모습이다.
이와는 반대로 청룡과 백호가 정면으로 마주치며 대립하는 지세에서는 형제자매간 불화와 다툼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바로 거지 허탕골의 청룡 백호의 모습이 풍수적인 용어로 “경권”에 해당한다. 서로 주먹 자랑(다짐)을 한다는 뜻이니 결국 집안이 풍비박산 나며 망하게 되니 끔찍한 일이 아니겠는가? 결국,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배겨나지 못하니 이래저래 걸인들께서 허탕 칠만하리라 본다.
거지 허탕골(구글 지도)
거지 허탕골의 비보
이렇듯 사람이 거주하지 못하니 전력선 철탑이 마음 놓고 터의 중앙을 가로질러 지나가고 있었다.
이 불모지를 개선할 방법은 병목에 해당하는 수구에 인공 언덕이나 숲을 조성하여 물과 기의 빠짐을 감소시키고, 곳곳에 담수시설을 조성하여 음기운만 왕성한 지세를 양기운인 물과의 음양 조화를 꾀하여 그 순환을 원활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청룡 일부 절비한 부분을 조경 식재하거나 가려 바람의 통로를 차단할 필요가 있다.
평면적 개념으로 보면 거지 허탕골의 지형은 흉지가 아니다. 그러나 땅의 경사와 고저 이론에 따른 입체적 길흉도 반드시 간파하여야 한다. 풍수적인 선택은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대사이며, 흉지는 가차 없이 외면해야 하는 극히 이기적인 이치이다. 아무튼, 풍수는 사람의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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