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이야기(칼럼)

상주 청룡사

풍수명인 2016. 11. 16. 18:25

청룡사는 상주시 동부의 중동면 오상리 비봉산(飛鳳山) 7부 능선의 가파른 절벽 위에 자리하여 낙동강을 굽어보고 있다. 대한불교법화종 소속인 소규모 사찰로 아름답고 시원한 전망을 자랑한다.

 

 

 

비봉산과 낙동강(네이버 지도)

 

상주 지역은 사찰이 많지만, 낙동강이 휘감는 중동면 일대에는 청룡사가 유일한 절이다. 사찰은 1674년(현종 14)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주 전각인 극락전, 산신각, 요사, 종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반적인 사찰의 중심전은 맏배 지붕이 주류를 이루나, 청룡사 극락전은 팔작지붕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건물로 절터의 왼쪽 청룡 자락 안쪽에 있으며 극락전 앞에는 오층석탑이 세워져 있다. 산신각 역시 정면 1칸·측면 1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극락전 뒤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절벽 끝으로는 종각이 있다. 요사는 현대식 2층 건물이다.

극락전 앞에는 지름 130cm가 넘는 석조 좌대와 이와 비슷한 크기의 맷돌이 있음으로 보아 청룡사가 오래전에는 많은 신도의 수행처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청룡사는 깎아지른 절벽 위에 자리 잡고 있지만, 그 뛰어난 풍광 때문에 예로부터 불자뿐만이 아닌 풍류와 시인 묵객들이 많이 찾았다 한다.

 

청룡사

 

청룡사 극락전

 

청룡사의 청룡

17세기 창건되어 수백 년의 부침을 겪어온 청룡사의 지리적인 하이라이트는 극락전과 낙동강의 공간을 차단하는 청룡이다. 사찰을 빙 둘러친 백호에 비하면 있는 듯 없는 듯한 청룡 자락이지만, 강바람을 막고 들어온 기를 새어나가지 않게 한다. 따라서 청룡에 바짝 붙은 극락전에 혈기운을 맴돌게 한다.

이처럼 청룡의 역할이 지대하지만, 가래질 수십번에 그 흔적이 사라질 정도로 그 규모가 미미하니 자나 깨나 청룡의 비보에 골몰하였을 것이다.

 

갈형(喝形)으로서의 청룡사

위와 같이 청룡의 규모가 미약하니 선사께서는 “청룡사”라는 절 이름을 지어 사람들로 하여금 부르게 하여, 그 부족함을 북돋우는 효과를 도모하였음을 짐작게 한다.

원래의 갈형은 각각의 독특한 기를 가진 만물 특히 산이나 물의 형상을 살펴 그에 상응하는 명칭을 부여한 후 터를 잡기 위한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갈형의 효과를 넓게 보면 부족함을 보완하려는 비보술(裨補術)을 포함한다. 즉 청룡의 약함을 보강하는 의도로서 “청룡사”라고 빈번하게 부르게 한 결과, 수많은 사찰이 폐사되었지만, 청룡사가 오늘날까지 건재하는 연유이리라 생각한다.

 

청룡사의 청룡 백호(네이버 지도)

 

고지대의 절터

낙동강이 90도로 급회전하며 토사와 바위가 깎이는 곳에 청룡사가 자리해 있다.

여기에서 또 하나 청룡사의 풍수적인 고려 사항이 있다. 깎아지른 절벽 위에 절을 세운 결과, 낙동강의 거대한 수살이 덮치는 낮은 곳을 피함과 동시에 끊임없이 밀려와 산을 타고 오르는 수 기운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터가 강기슭에 가까운 저지대에 자리하였더라면 수살을 버티지 못하고 폐사하고야 말 운명이었으리라.

1970년대 전후 서울 한강변의 변모한 사례를 보자. 이전에는 강변을 덮치는 수살을 견디지 못하고 농경지 또는 뽕밭으로 사용되었으나, 중장비에 의한 토목 기술의 발달로 도로와 둑이 조성되면서 비로소 수기가 완충되며 돈이 몰리는 부촌이 형성되었다.

서울의 한강변은 지형지물에 의한 평면 사례이고 청룡사터는 고저에 따른 사례로 강한 살을 완화해 피함과 동시에 좋은 기운을 받는 방법인 것이다. 즉 평면적으로 보면 청룡사 터가 요대수의 반대편인 반궁수에 해당하나 높은 곳에 있어 살을 피하고 수기를 받고 있다. 풍수는 똑같은 공식이 존재하지 않는 변화무쌍한 이론이니, 제일 두려워 해야 힐 것은 고정관념이다.

 

급경사의 절벽 위에 터를 점혈한 선사의 혜안을 헤아려 우러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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