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이야기(칼럼)

세 개의 ‘나’

풍수명인 2011. 8. 31. 12:38

'나'라는 존재를 나 자신은
당연히 잘 알고 있어야 하나
이 세상의 지식 중
가장 철저히 가려진 부분이다.

수천 년의 철학과 종교 역사를 뒤져도
'나'를 명확히 말해 준 적이 없다.
진아를 알지 못하게 하던 선천이었다.

가장 알기 쉬운 '나'는
우리가 잘 아는 생로병사를 겪는 육체이다.
우주의 시간으로 보아 찰나를 살고
좀 더 살려고 집착하는 존재이며
그 너머의 '나'를 찾는 것을
머리 아파하고 포기하게 하던 존재이다.

그다음의 '나'는 육체에 머물지만
육의 옷을 벗으면 홀로 남는
기로 이루어진 '신'이다.
물질계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 '신'이 무덤에 머물러
자손과 기교감을 한다고 착각을 한다.

그래서 풍수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조상 무덤을 잘 돌봄이 효를 다하고
복을 받는다는 수천 년의 교훈을
전혀 의심 없이 배우고 가르친다.

그러나 생시의 기억과 모습을 지닌
진정한 '자기'는 그곳에 없다.
다만, 뼈라는 물질로 된 또 다른 '신'이
자손과의 인연으로 이어져 있다.
그러하니 음택(무덤) 풍수의 효와 복중
효의 의미는 사실 없는 것이다.
과거의 지혜 있던 사람들은 한 육체에
여러 신이 있음을 간파하였다.

육을 벗어 훨씬 자유로워진 '나'는
육보다 훨씬 긴 시간을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이제까지 은폐되었지만 
애석하게도 육을 벗은 후를 몰랐으니
맨 하부 약자의 삶이 기다릴 뿐이다.

대개는 그분들이 갈 곳이 없어
자손의 육 속에 머무르지만,
살아 있는 사람들은 알지 못하고
"너무 애절하여 가슴에 묻었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일 년 중 유독 5월(가정의 달)이 오면
작고하신 부모님 그리움으로
가슴 저미곤 한다.
조상을 좋은 곳으로 모신 사람으로서
필요없는 가슴앓이지만
생시에 살갗 비비던 그리움이리라.
오히려 모름이 약이라고
좋은 데 모시지 못한 사람들이
걱정이 없어 보인다.

첫 번째 '나(육)'보다 훨씬 오래 사는
두 번째 '나(신)' 속에는
세 번째의 '나(영)'가 담겨 있다.
두 번째 나라는 '신'도 죽으면 흩어지고
세 번째 '나'가 흘러나와 자의와는 무관하게
곤충류, 동식물, 사람, 등등으로
무수한 윤회를 하여 왔다.

 
세 번째의 '나'야 말로 진아(眞我)이다.
종교계에서는 '신'과 '영'의 단어를
혼용하여 혼란스럽게 하였다.
두 번째 '나'가 '신'이고
세 번째 '나'는 '영'이다.

이 '영'은 창조주께서 출생시키신 이후
자식으로서 진한 애정을 받아 온 존재이다.
태천부터 수조 억 년을
온갖 생명체로 윤회하여 왔으니,
수천 년 전의 성현들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고귀한 지성체이다.

육과 신이 무수히 윤회하면서 쌓아 놓은 
두꺼운 때 속에 영의 빛남이 묻혀 있다.
이 영을 다시 발광하도록 깨끗이 씻어냄이
육체인 내가 짊어진 삶의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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