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이야기(칼럼)

춘천(春川)의 풍수지리 1

풍수명인 2016. 8. 10. 23:06

산에 둘러싸이고 평야 지대가 별로 없는 춘천은 인구 유입이 저조하여 정체된 도시였다. 즉 수기(水氣)가 부족하여 음과 양 기운이 심하게 불균형인 상태로, 산맥이 겹겹이 둘러싼 분지 지형이다. 또한, 서울과 수도권의 상수원에 접해 있다는 이유로 자유로운 개발에 제한을 받아온 결과, 도시의 발전과 확장에 장애가 되었다.

 

1960년대에 건설된 의암댐은 춘천의 도심 가까이에서, 그리고 춘천댐과 소양강댐은 도시 외곽의 풍수 기운을 변화시키고 북돋워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과거 넘쳐나는 음 기운으로 목말라 하던 대지에 의암호와 소양호 등의 저수로 말미암아 음과 양의 기운이 조화를 이루니, 비로소 도시가 제 기능을 발휘하는 듯하다.

춘천의 과거 모습인 산간계곡에서는 장풍(藏風)-바람을 갈무리함-을 중요시하였으나, 현재와 같이 의암호에 저수된 물은 평평한 수면으로 넓은 평야가 되니 득수(得水)-물을 얻는다는 뜻-를 먼저 고려한다. 따라서 득수를 맨 먼저 살피는 새로운 춘천으로 변모하였다.

 

의암호

요즈음의 풍수이론은 오행의 적용과 변화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오행 이전에 음양의 균형을 먼저 살펴 전체 윤곽을 파악함을 기본 전제로 하여야 한다.

 

자연을 정동(靜動)의 기준으로 보아, 의암호는 양의 기운-물처럼 움직임이 활발하니 남성에 비유됨-으로서, 산맥으로만 이루어져 음의 기운-높은 산처럼 움직임이 없어 정적이니 여성에 비유함-이 강한 춘천 일대의 음양의 균형을 이루는 역할을 하였다. 또한, 강 계곡의 깨지고 흉한 지형을 물로 채워 평탄한 명당으로 바꾸고 풍수적인 좋은 터로 개량하였다.

 

의암호

 

의암호에 몸통을 담그고 있는 섬들이 물 위에 노출한 모습은 마치 책상 위에 놓인 붓처럼 문성(文星)이다. 이 문성은 수기(水氣)를 모아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또한, 문성은 물을 천천히 흐르게 한다. 대개 이런 지역에서 명당이 만들어지는데, 물이 서서히 흐르는 지역에서는 바람 또한 잔잔하여 생기가 모이고 쌓인다. 반면 급류 지역에서는 바람도 빠르게 불어 땅의 기운이 비산(飛散)되어 흉지가 된다. “행주형(行舟形) 지세”란 강가에 물이 굽이쳐서 마치 물길을 헤치고 나아가는 배의 형태 또는 반달과 같은 지역을 말한다. 중도, 붕어섬 등은 행주형인데 유속을 느리게 하여 재물이 쌓이게 하는 역할을 하니 의암호가 낳은 풍수 효자이다.

 

수구(水口)-물 빠지는 곳-가 넓은 곳에서는 생기도 흩날리기 때문에 건강과 재물에 불리하고 명예도 잃는다. 반면 수구가 좁은 지역에서는 생기가 모이기 때문에 재물, 건강, 명예에도 유리하다. 의암댐은 수구를 좁히는 역할을 한다. 즉 물의 배출량을 줄이고 모으니 인작(人作)-사람이 만듦-으로서의 걸작품이다. 보통은 수구가 좌우에서 좁혀 들어오나 의암댐은 물을 가두어 위아래에서 좁히는 형태이다. 사람의 배출구인 항문이 생시에는 꽉 잠겨있으나 수명을 다하면 넓혀지며 새기 시작하는 이치와 같다.

 

실로 의암호를 비유하자면, 사내 냄새에 찌들어 살던 춘천이라는 홀아비에게 시집 온 노련한 부인이라 하겠다. 좀 떨어진 소양호나 춘천호는 그 딸들에 비유해야 하지 않겠는가.

 

한승수 선생 집

서면의 한승수 선생 집은 소양강을 정면으로 향(向)하여 역수(逆水)-물이 흘러오는 곳을 거슬러 향함-하여 소양2교 밑을 도도히 통과하는 물을 맞이하고 있다. 또한, 의암호 중간의 상중도는 그 거대한 수기를 적절히 완충시킴과 동시에 일자문성의 필기도구 모습으로 문성(文星)의 기를 발산하고 있다. 그 수기와 문성은 세계적인 인물 배출을 암시하는듯하다.

만약 상중도가 없다면 그 거대한 수기를 감당할 수 없어 명당이 흉지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과거 집을 풍수적으로 판단하여 향을 정하고 설계한 혜안(慧眼)의 선배에게 경의를 표한다.

 

의암호의 일자문성

 

많은 풍수인들이 한승수 선생 집에 대하여 향을 잘못 정하였다고 비판한다. 즉 봉의산을 향으로 해야 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봉의산은 강원도청과 한림대학교를 품에 안은 거인이다. 따라서 서면의 한 선생 집에서는 봉의산의 우측 뒷등을 보며 하염없이 통사정하는 위치이니, 등 돌린 산은 교감할 대상이 아니다.

흔히 양택 또는 음택이 비록 좋은 명당 혈처에 자리하였지만, 발복이 안 되거나 후손이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가끔 본다. 바로 향을 잘못 정하였기 때문이다.

 

자연을 모두 생명체로 보고 그들과 교감하는 기술이 풍수지리이다.

 

이 일대는 금산초등학교 일대, 춘천문학공원 근처 그리고 서면사무소 일대의 세 지역 사이를 흐르는 두 개천이 의암호와 만나는 삼합수처(三合水處)이다. 그중 한승수 선생 집을 포함한 서면사무소 일대는 의암호의 흐름을 거스르는 지형과 물길로 기운을 가장 많이 받는 곳이다. 반면 금산초등학교 일대는 상대적으로 기의 축장에 불리한 물길을 끼고 있으며 의암호의 파구향-물 나가는 곳을 바라봄. 기가 지속해서 빠져나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개천과 의암호의 물길이 순수(順水) -역수(逆水)의 반대-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세 지역의 땅값에 참고할만한 귀한 풍수 자료이지 않겠는가.

 

서면 일대 3개소 물길(네이버 지도)

 

이처럼 풍수지리는 역(逆)을 추구하는 학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세상에서 순(順)함을 강조하는 이치와는 정반대이다.

 

박사마을

2000년대 초쯤, 박사를 유독 집중적으로 많이 배출하고 있는 춘천시 서면 마을 일대의 풍수지리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여 검토한 적이 있다. 1968년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110명의 박사를 배출하여 ‘박사마을’이라 부르고 있었다. 유사 이래로 단 한 명의 박사도 배출하지 못하여 왔던 극히 빈곤한 시골 마을에서, 어느 시점부터 갑자기 박사 학위 취득자가 나타나더니 그 수가 꾸준히 증가한 기록을 확인하였다. 또한, 교직의 꽃인 학교 교장의 배출도 그 수에 있어 버금가는 규모이다.

이어서, 1967년 마을 앞 의암댐이 완공되어 담수량이 많아지기 시작한 때와 박사를 배출한 시기가 맞아떨어짐을 밝혀낸 성과가 있었다.

 

산이나 계곡 같은 체(體)는 움직임이 없는 음의 기운을 가진 자연이다. 반면 사람이나 차량이 다니는 평지와 물이 흐르는 천, 강 등은 동적인 용(用)이요 양의 기운을 가진다. 골짜기의 마른 모습만이 있던 서면 일대가 의암호의 담수로 음양이 조화하니, 마을의 학생으로서 잠자는 체를 풍부해진 댐의 용이 일깨우고 자극하는 효과로 나타남이다. 음과 양, 체와 용은 떼려야 뗄 수 없는 훌륭한 동업자이다.

또한, 용의 작용으로 깨어나고 자극받은 체는 의암호에 떠 있는 일자문성(一字文星)의 영향으로 박사, 교장 등 학자 모습으로 발현되고 있다.

더욱이 박사 마을 선양탑이 있는 금산리를 포함하는 서면 일대는 북한강과 소양강이 합수하는 지점이니 제반 효과가 한층 배가되는 길지이다.

 

풍수적 판단을 함에 있어 다시 강조하는 바는, 다른 요인에 앞서 음양의 기운을 먼저 살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박사마을의 연원을 인근의 신장절공 묘소의 발음이라는 주장은 전혀 풍수지리 이론에 맞지 않는다. 장절공 묘는 조밀한 용호-청룡과 백호-에 둘러 쌓여있어 그 밖에 있는 마을들로는 단 한 술의 생기도 새어나가지 못하는 지형이며 어떠한 지맥도 연결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시기적으로도 거의 1100년이 되는 묘의 뒤늦은 발음은 상상하기 어려운 추론이다.

한편 서면 일대에서 농사짓는 학부모들의 인성이 의암댐으로 말미암아 근면하게 바뀌어 학생들의 뒷바라지에 충실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인문사회적인 연구 결과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하겠다.

 

상중도 앞 합수처

앞서 한승수 선생 집의 일자문성 안산 역할을 하는 상중도의 앞에서는 북한강과 소양강 줄기가 부딪치며 강한 역수와 합수가 있는 곳이다. 두 강이 합하면서 뭉치는 기운은 상중도가 상당한 길지로서 좋은 사업대상지임을 잠재(潛在)하고 있다.

다만, 과거의 한강 변의 예로 보면, 거대한 수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채소밭 정도에 머믈러 있던 땅을 중장비로 둑을 쌓고 도로를 건설하여 수살을 완충시킨 결과, 지금은 한강 변이 부의 상징으로 변모하였음을 간파할 수 있어야 한다. 아마도 한강 속의 여의도는 더 적절한 예가 되리라 본다.

 

상중도 앞 합수처(네이버 지도)

 

따라서 현재의 상중도를 길지로 탈바꿈시키려면 물과 접하는 곳에 수기를 감소시킬 수 있는 도로, 둑 등 구조물의 건설이 필요하리라는 판단이다.

장차 근화초등학교 부근의 근화동 및 소양동 일부 지역과 의암호의 섬들이 개발의 붐을 타게 된다면 상당한 길지로 변화할 것이다. 그즈음 춘천이 화려한 옷으로 새로 단장하고 한층 더 도약하리라는 상상을 해본다.

 

방동리 신장절공 묘역

의암호와 맞닿은 장절공묘의 외백호 자락이 외청룡 끝보다 돌출되어 있음이 방동리의 명당을 만드는 백미(白眉)-여럿 가운데에서 가장 뛰어남-중 하나이다. 더욱이 외백호 끝의 애니메이션 박물관은 자연과 하나 된 듯 마치 오른손에 쥔 바가지와 같이 의암호의 수기를 방동리 국(局) 내로 퍼담는 역할을 돕고 있다.

방동리의 물길이 의암호와 만나는 각도는 거의 120도 정도로 강하게 의암호와 부딪치며 역수하고 있다. 이 강한 역수는 방동리 명당을 만드는 으뜸가는 백미이다.

 

방동리 수구(네이버 지도)

대룡산에서 본 신장절공 묘

 

이도상합(二道相合)-두 물길이 소용돌이치듯 거스르며 만남. 마치 남녀가 서로를 놓아주지 않고 교합하듯 기를 섞음에 비유-이란 두 물길이 역수 함을 말하는데, 이를 거꾸로 두 물길이 순수(順水)하며 거스름 없이 흐르는 개념으로 잘못 알고 있는 풍수인들도 있는듯하다.

 

방동리 입구로 진입하며 좌우로 첩첩이 묘역을 유정하게 감싸는 용호 자락이 또한 일품이다. 한치도 배반하며 거스르는 부분이 없이 혈처를 감싸고 있다. 이로 말미암아 장절공의 자손 중 걸출한 인물들이 다수 배출되었을 것이다.

 

 

신장절공 묘 내백호

 

좀 흠이라면 장절공 묘의 우측의 바람을 막아줄 백호의 부실함으로 묘역의 끝의 짧은 내백호 자락에 이를 때까지 바람이 멈추지 않는다. 따라서 바람길에 노출된 묘 정면의 길게 조성한 잔디 공터는 무맥지이며 묘 정면을 향하여 부는 골바람의 원인이 되고 있다. 묘소 조성에 문제가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무릇 명당은 적당한 거리에서 앞쪽 시야를 막는 지형이어야 하는데, 반대로 공들여 시야를 멀리까지 트이게 조성하여 골바람을 부르고 생기의 축장을 어렵게 하고 있다.

 

풍수는 이기적인 삶의 기술이다. 나(명당)는 밖을 잘 보지만, 밖에서는 나를 잘 보지 못하게 함을 추구한다.

 

묘 좌측의 내청룡이 일품이다. 힘있게 뻗어 나간 그 끝이 묘역을 향해 돌아보며 본신안산(本身案山)-청룡이나 백호의 산줄기 중 하나가 뻗어 나가 안산을 이룸-이 되니 참으로 공손한 모습이다. 반대로 묘역을 가장 가까이에서 감싸고 있는 내백호는 간신히 봉분 주변에 바람이 들이치지 않을 정도 만큼만 짧게 형성되어 있다. 사정이 허락하면 내백호의 허술함을 좀 더 비보 할 것을 권하고 싶다.

 

신장절공의 기울어진 안산, 파구처, 문필봉, 묘 앞의 바람 길

 

그 옛날 도선국사께서 애초 왕건의 신후지로 이곳을 점지하였다고 전한다. 왕건은 자신을 대신해서 전사한 신숭겸을 위해 신후지를 양보하고 없어진 머리를 금으로 만들어 장사지냈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묘는 도굴 등을 방지하고자 세 개의 봉분을 조성하여 그 진(眞)과 가(假)를 구별하기 어렵게 하였다고 한다. 이제는 관리체계를 갖추었으니 진처(眞處)를 숨김은 큰 의미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따라서 그 진처를 가늠해봄이 풍수적인 연구 차원에서 꼭 필요하리라 본다. 여기에서의 주안점은 첫째 힘 있는 청룡 쪽에 치우친 봉분이 진처인가, 아니면 둘째 바람을 더 잘 피할 수 있는 반대쪽 봉분이 진처인지, 셋째 중앙의 균형 잡힌 자리의 봉분이 진처인가 등 풍수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이치로 어느 기준을 적용해야 하는가가 해답이다.

 

신장절공 묘

 

기울지 않은 안산 및 노적사

 

무릇 안산은 선비의 책상처럼 기울지 않고 평탄해야 하는데, 장절공 묘의 향(向)은 청룡 끝 본신안산의 우측 경사진 밑 지점을 향하고 있다. 그 결과 방동리 전체 명당의 기운이 흘러나가는 파구처를 정확히 바라보고 있음을 보고 잠시 혼란스러움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었다. 물 빠지는 파구처를 향함을 풍수에서 극히 피하는 흉향(凶向)인데, 우리나라 명당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혈지의 향이라고 함에는 일말의 의구심마저 든다.

만약 본신안산의 정상을 향으로 하여 좌우로 기울지 않은 곳을 바라보게 한다면 멀리 조산 격인 노적봉 형태의 귀사(貴砂)-길격의 귀한 산-를 보게 되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혈처가 되지 않겠는가 하는 판단이다.

애초부터 이러한 향을 하였는지 아니면 후에 묘를 관리 또는 보수하면서 바뀌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또 하나 굳이 지적하자면, 장로(葬路)-묘소를 오르내리는 길-는 묘에서 보는 기준으로 좌측으로 오르며 우측으로 내려가도록 조성함이 전례이다. 즉 해가 동에서 뜨고 서쪽으로 지는 이치를 고려하지만 자연 방위는 따르지 않고 오직 묘의 청룡 쪽에서 오르고 백호 쪽으로 내려가는 이치에 따라 장로를 조성함이 일반적이다. 이런 이유로 묘 앞의 망주석에 새긴 다람쥐가 청룡 쪽은 오르는 모습이며, 백호 쪽은 내려가는 모양새를 하는 것이다.

장로는 기의 순환에도 미치는 영향이 있으리라 보는데, 여기에서는 우측으로 오르내리는 하나의 장로만을 만들었으니 참고할 사항이다.

 

비룡지

 

묘역 아래에 ‘비룡지’라는 연못을 조성하여, 왕성한 산 기운을 조금이나마 융화시키고 음양의 균형을 맞추려는 자손들의 노력을 헤아려보며 뒤돌아 하산한다.

(춘천(春川)의 풍수지리 2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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