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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순사(孝順砂)와 귀사(鬼砂)

1453년(단종 1년) 수양대군이 선왕 때부터 원로를 지낸 신하들을 없애고 스스로 정권을 잡은 계유정난(癸酉靖難)이 있었다. 당시 안평대군을 중심으로 김종서와 황보인 등은 수양대군의 야심에 대항하지만, 오히려 모반으로 몰리며 죽임을 당하게 되고, 이 사건으로 황보인과 외척 관계에 있던 해동 처사 노유근이 은신처를 찾던 중 1454년 청주 가산리 원골 마을로 피신 오면서 교하노씨 청주 입향조가 되었다. 아직 이른 봄날, 해동 처사 노유근 선생의 묘소를 둘러보았다. 묘좌유향에 신파로 정혈처에 든 묘이다. 청룡이 5~6겹씩 감싸고 내백호도 가까이에서 유정하게 혈처를 감싸는데 3~4겹으로 또다시 혈처를 감싸고 있다. 용이 귀성 부근에서 혈처를 향해 크고 넓은 용맥을 만들었다. 용맥의 흐름을 바꾸는 옹사가 있으니..

청평사 산세

청평사의 그밖의 사진들입니다. 산이 힘있게 꿈틀거리며 생동하는 모습입니다. 대웅전 불상자리는 직경 30m정도의 혈심에 위치하였으나, 지전류 두가닥이 혈심을 3m정도 비껴 흐르고 있어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가장 풍수적으로 눈여겨 볼만한 산세는 절로 진입하는 계굑의 좌우 산자락들이 하나같이 위에서 흘러내리려는 기를 역으로 막아 오래 머물게하는 작용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 한가지는 절터를 볼 때, 바위와 지형이 뾰쪽하듯 아직 살(殺)을 벗지 못하였으니 이런 곳은 사람들의 거처로는 부적합하고, 신을 모시는 장소로 적합하다는 점입니다. 사람이 거처할만한 지형은 순화되어 부드러운 산세를 한 장소입니다.

윤회의 대차대조표

풍수지리를 맹신하고 명당에 집착하는 정도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신앙에 가까운 신념이다. 조상 묘의 산화에 관한 현상은 사람의 길흉화복과 긴밀하고 대단히 복잡하게 얽혀 있다. 한편, 선대 묘의 산화에 앞서 나와 (조상)이 지은 전생의 업은 사람의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또한, 조상 묘와 업은 물론 의식주를 위하여 하는 행위 자체도 길흉화복을 결정하는 요인이 된다. 대개는 사람의 운명에 영향을 주는 요인을 풍수 분야 외에는 크게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그 길흉화복 현상이 맞지 않아 사람들이 풍수지리를 반신반의하고 미신이라고 하는 한 원인이다. 부실로 판명한 금융기관 지점장의 자살, 알토란같은 돈을 맡긴 사람들의 피맺힌 절규, 성 상납 강요를 견디다 못한 연예인들의 죽음, 장애학생을 상습 성폭행한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