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이야기(칼럼)

천작(天作)과 인작(人作)

풍수명인 2015. 7. 3. 16:44

천작(天作)과 인작(人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산, 강, 바다 등 하늘이 만든 천작(天作)과 인간이 조성한 인작(人作)으로 이루어졌다. 천작인 땅 위에 구조물을 짓는 인간 역시 천작에 속한다. 말하자면 인간 역시 하늘이 내는 것이지 사람 스스로 태어나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인작의 흥망성쇠는 천작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기운으로 보면, 태양은 일정한 모양으로 항상성이 있으나, 달은 초승달과 보름달처럼 기울고 차오르며 변화하니 수태하고 출산하는 기운을 나타낸다. 따라서 밤낮, 명암, 생사의 의미와 함께, 생산하는 여성으로서의 달은 음을 상징하며, ‘양음’이라 하지 않고 ‘음양’이라 부르며 선후를 따지기도 한다.  

 

   세상이 처음 만들어질 때는 하늘과 땅, 남자와 여자 등 음양의 기운만이 있어 서로 생산, 화합, 보완의 관계로 이루어졌다. 즉, 세상은 천작이 주를 이루었다.

   그 후 오행의 상생상극론, 10간12지, 하늘을 세분한 별자리체계, 국가시스템 등 현재 우리 주변은 많은 인작들로 이루어졌다. 이처럼 분할된 세상과 이치 속에서 살아온 만큼 전쟁, 갈등, 대립의 역사와 괘를 같이 해왔다.

   세계평화, 공존, 자연과의 상생 등 이런 말들은 태초의 세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무의식의 구호이다.  

 

   지난 5월과 6월에 신지식인협회 등산모임에 참가하였다. 부산의 금정산이 애지중지 품고 있는 범어사와 여주의 우두산 자락에 있는 고달사지 터를 회상하고자 한다. 두 사찰의 운명이 극명하게 갈리는 이치를 그들 주변의 자연, 즉 천작과 인작을 살피며 고찰하고자 한다.  

 

상남자 금정산 

 

   백두대간에서 낙동정맥으로 분지한 끝에 부산을 관장하는 금정산(金井山)의 봉긋한 산두가 사방을 굽어보고 있다.<신승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는 “금빛나는 물고기가 하늘에서 내려와 우물에서 놀았다”라고 하여 금정산(金井山)이라고 하였다.

   산머리가 둥그런 모습은 오행으로는 금형이니 산 이름이 금(金)자로 시작한다. 또한, 그 옛날 많은 도인이 산 정상 바위에 오목한 우물을 파고 물을 고이게 하여 기도처로 삼았다. 금정산은 암반으로 이루어진 기가 강한 숫산이다. 기가 강하니 기도하기 좋은 곳이다. 따라서 산 정상에 우물(井)이 있으니 ‘금정산’이라고 했으리라 본다. 실제로 우물이 있다고 하나 가보지는 못했다.

 

금정산


   바위가 많은 금정산은 골산(骨山)이며, 양산 또는 숫산이고, 지리산과 같이 흙이 많은 산은 육산(肉山)이고, 음산 또는 암산이라고 한다. 여기에 더하여 잘 자란 소나무들이 산 전체에 즐비하다. 그것도 일본에서 많이 자생하는 흑송이다. 우리나라의 다른 지역에는 홍송이 많으나 이곳은 거무스레한 소나무가 주류를 이룬다. 붉은빛의 홍송을 여성에 비유한다면, 흑송은 남성이다. 이래저래 금정산은 사내 내음이 코를 찌르는 상남자 산이다.

 

흑송과 홍송

 

  흑송의 숫기가 강하고 바위가 많은 양산이니 화기가 강할 수밖에 없다. 산 정상의 우물이 화기를 조금은 감소시키겠지만, 강한 화기를 감당하기엔 태부족이다. 

  따라서 금정산이 열기를 식힐 가장 좋은 음양 파트너는 범어사(梵魚寺)이다. 금빛 나는 물고기가 하늘에서 내려와 우물에서 놀았다고 하여 그 자리에 범어사를 지었다 한다. 금정산의 화기와 양기를 중화시킬 곳이 수기와 음기가 충만한 범어사 터임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이처럼 둘의 음양이 배합하고 수기와 화기가 오행상 상극 관계이니 금정산이 애틋하게 품은 범어사가 주혈처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겠다.  

 

기도도량 범어사


  사찰에 진입하려면 먼저 만나는 문이 일주문(一柱門)이다. 기동이 하나인 문이라는 뜻인데 실제로는 두 개 이상이다. 범어사의 일주문은 특이하게 네 개의 기둥이며 ‘조계문“이라고 이름 지었다. 두 개이든 네 개이든 옆에서 보아 일렬로 나란히 세웠다 하여 일주문이다.


  일주문을 지나자 천왕문(天王門)이 보인다. 이른바 사천왕상을 안치한 곳이다. 동서남북 천지사방을 수호하는 신장으로 동쪽은 칼을 든 지국천왕, 서쪽은 탑과 삼지창을 든 광목천왕, 북쪽은 비파를 든 다문천왕, 남쪽은 여의주와 용을 든 증장천왕이 각각 불법을 보호하고 악함을 물리치는 역할을 한다. 각 천왕이 손에 든 상징물은 사찰에 따라 배치가 다른 설명을 하기도 한다.  

 

   천왕문을 지나면 본당에 들어서는 마지막 관문인 불이문(不二門)이 나타난다. 이곳을 통과해야만 진리의 세계인 불국토에 입장할 수 있다 한다. 진리는 둘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부처와 중생이 차이가 없고 생과 사, 만남과 이별 역시 하나로 귀결된다는 뜻으로, 불이(不二)의 이치를 깨달으면 해탈한다 하여 해탈문이라고도 한다.  

 

   대웅전을 오르는 오른쪽에 삼층석탑이 있는데, 원래 탑은 사리를 보관하는 용도이다. 받침석과 기단, 본체, 두륜부로 이루어지는데, 층수는 처마 모양의 수를 세면 된다. 스님들의 사리는 음기인데, 층수를 양기인 홀수로 하여 3층 탑, 5층 탑, 7층 탑으로 하여 음양의 조화를 꾀했다.

 

3층 석탑

 

   돌계단을 가파르게 오르면 대웅전과 좌측의 지장전, 우측의 관음전이 나타난다. 각 사찰은 대웅전 안의 상을 석가모니, 아미타불, 미륵 중 택일하는데 범어사는 석가모니불을 택하였다.

   좌측의 지장전 내부에는 지옥 세계를 관장하며 지옥 중생들이 모두 구제될 때까지 성불을 미룬 지장보살이 있으며, 우측의 관음전에는 감로수 병을 든 관세음상과 약병을 든 약사여래상이 있다.

 

   불교에서는 자신 안의 불성을 찾아서 성불함을 근본으로 삼는 반면, 기도를 통하여 복을 구하는 신앙은 부정한다. 때문에 풍수에서 제일 중요한 결혈처를 대웅전이 아닌 지장전이나 관음전에 두어 기도처로 사용한다.

 

   대개는 부처의 경지에 오른 이를 모신 대웅전에 결혈처가 있으리라 추측을 하는데 잘못된 판단이다. 깨달음은 얻었으되 아직 부처가 되지 못한 이를 보살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절에서는 일하는 여자분들까지 보살이라 칭하는데 좀 후한 대접이리라.

   현재 관음전에 모신 ‘관세음보살님’은 잘못된 호칭으로 보살의 차원을 훨씬 초월하신 분이시다. 구복신앙의 장소를 불교의 기준으로 말하자면, 관음전이 아니고 지장전이나 약사여래전이어야한다는 의미이다.  

 

   금정산의 상남자 기운이 크게 뭉친 결혈처를 감지해보니 역시 불교 기준대로 대웅전 우측의 관음전이다. 지름 30m를 넘는 거대한 혈처에서 충만한 양기가 관음전의 잔잔한 음기와 아름답게 섞이고 있다. 천작의 기에 인작의 기 또한 영원토록 조화될 것 같은 모습이다.


비운의 고달사(高達寺)

 

   서기 764년에 창건된 여주 고달사는 국보 4호인 고달사지부도와 여러 보물급 문화재를 보유한 사찰이다. 사방 30리가 절터였고 상주하는 스님만 수백 명이었으며, 특히 고려 왕실의 비호를 받으며 번성했던 사찰이었으나, 언제 어떻게 폐사되었는지 분명치 않다.

 

   2015년 6월 13일 신지식인협회 등산모임에서 고달사지 부근에서 모여 우두산(牛頭山)을 향하였다. 어떠한 문헌을 찾아봐도 고달사지의 폐사 원인과 경위에 대한 명쾌한 설명을 찾을 수 없었기에 현장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보고자 작심한 터였다.

 

고달사지


   고달사지 빈터는 인근 주민들이 경작지로 만들어 농사짓다가 국가에서 다시 절터 부지로 환원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보였다. 멀리서 보기에 고달사지는 큰 국을 이루는데 수구가 허술함을 제외하고는 별 흠 잡을 데 없이 좋은 터처럼 보인다.

 

   군데군데 남아있는 석조 유물들을 지나쳐 터의 중심에 있는 석조대좌와 주변을 살피기 시작하였다. 석조대좌에는 청동불상이 올려져 있었으나 전시에 이를 녹여 군수물자로 쓰기 위해 반출하였다 한다. 지금은 좌대만 남아 있다.

 

   사찰 터의 중심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였던 좌대 주변의 풍수적 기운을 감지하여본 결과, 지름이 약 10m 정도의 대혈처에 정확히 석조대좌를 안치하였다.

   그러나 혹시 하고 재차 점검하니 높은 곳에서 사선으로 대혈처를 정확히 관통하는 지전류의 흐름이 느껴진다. 그 모습 그대로의 생명체로서 신앙의 중심이 되었을 청동불상이지만, 오랜 시간 지표를 흐르는 미미한 전기 에너지에 장시간 속수무책으로 노출되었을 것이다. 즉 땅 속 광물과 같은 전도체를 흐르던 지전류가 청동불상을 흐르며 증폭되고 사찰 전체에 부정적인 작용을 한 결과로 폐사에 이르게 되었다고 판단한다.

 

석조대좌


   결혈처는 지반이 비석비토로서 광물처럼 단단하여 수맥파가 침투하지 못하는 반면, 흙 속에 전도체 광물류를 비교적 다량 포함하므로 전기적 성질을 띤 지전류를 불러들이는 속성이 있다.

   그 옛날 우리나라의 3대 사찰이었을 정도로 규모 있던 절의 터 잡기를 소홀히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전류의 개념이 없었던 당시에는 결혈처만을 중시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이 지전류가 흐르는 곳에 잠자리하는 사람은 서서히 암이나 질병에 걸리게 되는 실례가 많이 있다. 몸의 저항력 저하, 깊이 자지 못하는 현상 등으로 항상 피로감을 느끼며 사업이나 학업에도 지장을 준다.

   마치 약한 볼트의 건전지 음극과 양극을 피부에 연결하면 찌릿찌릿한 미미한 자극이 지속하다 느낌이 무디어지는데, 세포가 스트레스를 받게 되며 병에 대한 저항력도 떨어지는 현상을 상상하면 이해가 쉬우리라 본다.

   이러한 지전류 흐름은 우리나라의 왕릉 등 꽤 이름있는 산소에서도 종종 감지되는 현상이다. 대개는 그 자손들이 산소를 쓴 후 일정 기간 발복을 하다가 시름시름 앓거나 사업에 지장을 받게 되어 점차 어려움을 겪게 된다.

 

   천작인 자연의 처지에서 보면, 지전류는 그곳의 자연이 생명활동을 하는 필수불가결한 현상이다. 즉 사람의 육체에서 작용하는 생체 전류와 같으며, 지전류 자체도 천작이라는 의미이다. 마찬가지로 땅속의 수맥도 자연이 스스로 순환 작용을 하는 생명 활동임을 알아야 할 때이다.

   장구한 세월 동안 그곳에 존재하던 주인은 자연이다. 뒤늦게 사람들은 그곳에 인작을 하고 주인 행세를 하며 수맥이나 지전류를 발견한 후 혐오할 뿐이다.

 

고달사지 규봉


   또 한가지 무시할 수 없는 고달사의 폐사에 관한 실마리가 있다. 석조대좌에서 주위를 세심히 둘러 본 결과, 고달사지가 많은 규봉(窺峯; 숨어있듯 담장 넘어 기웃거리는 도둑 형상의 산봉우리)의 표적이 됨을 발견하였다.

   나중에 그곳의 해설사는 “어느 시기에 능력 있는 스님이 수백 명의 인원을 데리고 절을 등지고 나가는 일이 몇 차례 계속되었으며, 상주하는 인원이 급격히 감소하면서부터 도둑들이 극성을 부려 남아나는 것이 없을 정도였다.”는 현장 설명을 하고 있었다. 즉 천작인 규봉의 존재를 무의식적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이 모든 부정적인 것의 시초는 지전류이리라 본다. 3만 평의 사찰을 지켜내야 할 중심이 지전류에 무방비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제까지의 경험상 지전류의 유뮤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수많은 사례를 보아 왔다. 다만 사람들은 모르는 영역을 일단 부정하는 습성이 있을 뿐이다.

 

   천작인 자연이 말한다. “혈이라고 다 좋은 곳이 아니야”, “이곳에 와서 집 짓는 인작을 하고 살아 봐”, 저 산 밑은 사람들이 살 곳이 못 돼“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