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이야기(칼럼)

삼시충과 준비전위

풍수명인 2018. 1. 31. 10:16

조왕신(竈王神)에게는 고약한 역할이 있는데, 바로 사람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역할이다. 부엌 또는 부뚜막의 신(竈王神)이 연말에 사람의 잘못을 하늘에 보고해 수명을 줄인다는 설화이다. 조왕신은 집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고 있는데, 그해 마지막 날 사람이 잠들었을 때 1년 동안 사람이 지은 죄를 옥황상제에게 빠짐없이 고해바친다고 한다. 죄상을 들은 후 화가 난 옥황상제께서는 사람이 지은 죄만큼 수명을 깎는데 더는 깎을 수명이 없으면 사람이 죽게 된다고 한다.

 

음력 섣달 그믐날 밤에는 집안 곳곳에 불을 밝게 밝히고 잠을 자지 않는 풍습이 옛날부터 있었다. 어려서 들어왔던 섣달 그믐날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는 말은 바로 조왕신 설화에서 비롯하였다. 이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고 하였는데, 대부분의 아이는 잠들지 않으려고 버티다 종내에는 잠들게 된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잠자는 동안 눈썹을 하얗게 칠하여 그만큼 나이를 먹어 늙었다는 분장을 연출하는 의미이다.

조왕신은 사람이 잠든 사이에 옥황상제에게 1년 동안 지은 죄를 고해바쳐 수명을 단축시키기 때문에, 밤에 잠을 자지 않음으로써 옥황상제께 고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편법의 한 형태로 전해져 왔다. 어릴 때부터 아이들이 잠을 자지 않도록 하여 인내하는 힘과 욕망을 억제하는 힘을 길러주는 효과도 있었으리라.

 

삼시충(三尸蟲)

도교나 한의학의 내용으로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우리 육체를 숙주 삼아 몸속에 세 마리의 충이 기생하면서 사람을 죽음의 길로 유도한다고 한다. 사람의 몸속에 있으면서 각종 해악을 끼칠 뿐만 아니라 경신일 밤에는 사람 몸의 백회혈을 열고 빠져나가 상제에게 죄를 보고하여 사람의 수명을 단축시킨다고 하는 3마리의 벌레이다. 물리적인 실체가 없는 기(氣)적인 충이다.

 

고서 포박자(抱朴子)-370년경에 만들어진 책으로, 선인(仙人)이 되기 위한 신선술의 이론과 실천을 설명한 도가의 고전 제6권 미지(微旨)에서는 “사람의 몸속에 있는 삼시(三尸)라는 벌레가 경신(庚申) 날에 하늘로 올라가 사람이 지은 죄를 보고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몸 안에 삼시가 있는데 물이지만 형체가 없다. 기실은 혼령귀신의 무리이다.”라고 했다. 따라서 삼시는 욕망이 일어나는 것에서 기인한 병이지 형체 있는 충이 아니다. 동의보감에서는 우리 몸속에 삼시충이란 벌레가 사는데 이 충이 사람을 조종한다. 사람이 도를 닦는 것을 싫어하게 하고 뜻을 버리게 한다. 또한, 타락한 생각을 하는 것을 좋아하며, 호르몬까지 조절하여 중독증에 빠트리고 욕망과 생사까지 조종한다는 내용이 있다.

 

상시충은 푸른색을 띠며 팽거 또는 청고·청복이라고 불리는데 눈썹 위의 상단전-도가(道家)에서 ‘뇌’(腦)를 이르는 말에 있으면서 우리의 정신세계를 혼잡하게 하고 타락의 길로 유도하는 충이다. 사람이 어리석고 잘난 체 하게 하며, 보물(寶物) 등 물욕과 관련이 있어 탐욕스럽게 한다.

중시충은 황색을 띠며 팽질 또는 백고·백복이라고 불리고, 심장 위의 중단전(中泥丸) 에 있으면서 숨기도 하고 나타나기도 하여 변화무쌍하다. 음식을 탐하므로 오미(五味) 등 식욕과 관련이 있다. 원기부족·건망증 등에 걸리게 하여 육신을 병들게 하는 충이다.

하시충은 흰색을 띠며 팽교 또는 혈고·적구라고 하며 배꼽 밑의 하단전(下泥丸)에 있으면서 사람을 색욕(色慾)에 빠지게 한다.

 

   하시 중시 상시(인터넷에서 퍼옴)

 

한편, 한의학에서는 세 마리 모두 비장에 살고 있다고 하는데, 이들이 평소에는 세 단전에 있다가 필요할 때 비장에 모이기도 한다고 한다.

 

전술한 내용과는 달리 삼시충을 상충(上蟲), 중충(中蟲), 하충(下蟲)으로 부르며 위에서 설명한 역할과는 좀 다르게 구분하는 예도 있다.

 

상충(上蟲)은 머리 뒤쪽 옥침혈(玉枕穴) 속에 있으며 황조(黃鳥) 즉 노란 새의 모습이다. 각고의 수도 결과로 상충을 몸 밖으로 축출하면 황조 모습이 비대한 성인의 체구만큼 커진다. 쫓겨난 상충은 추방자의 주위를 맴돌며 다시 들어올 기회를 엿보는데 추방한 사람의 단호한 태도에 재진입을 포기하고 사라진다. 혹 재진입하게 되면 더는 수도의 발전이 불가능하고 각고의 노력이 수포가 된다.

중충(中蟲)은 등 중앙의 협척혈(夾脊穴)에 있는데 흑색을 띤 구렁이와 비슷하다. 두 마리인데 하나는 머리를 심장에 꼬리는 중단전에, 다른 하나는 머리와 꼬리를 반대로 두어 서로 엇갈려 똬리를 틀고 있는데 그 모양이 태극과도 같다. 머리가 심장에 있는 충이 먼저 사람에게 사악한 마음이 들도록 하면 머리가 단전에 있는 충은 이를 행동으로 옮기게 한다.

제일 먼저 하충이 제거 또는 추방되고 다음으로는 상충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충이 처리되니 세 마리 충 중에서 중충이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사람의 노력으로 중층이 쫓겨나면 용의 모습으로 변화한다. 상충과 마찬가지로 추방자의 주위를 맴돌며 다시 들어갈 기회를 엿보는데 수도자가 호통치며 멀리 추방하여야 한다. 만약 다시 몸속에 들어오게 되면 더 이상의 수도 발전을 기대하지 못한다. 재진입하게 되는 이유는 수도자의 사악함이나 탐욕 등의 찌꺼기가 아직 마음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하충(下蟲)은 누에의 모습과 흡사하며 검게 보이거나 희게 보인다. 평소 하체의 미려혈(尾閭穴)-꼬리뼈 끝에 있는 혈자리에 머무는데 성인의 가운데 있는 손가락보다 좀 더 크다. 몸에서 빠질 때는 하체의 무수한 모공과 땀구멍으로 빠져나간다.

 

이처럼 사람에게 여러 해악을 끼치기 때문에 신선이 되거나 장생하려면 반드시 삼시충을 처리해야 한다. 그 후에는 욕심이 없어지고 수도 의지도 확고해진다고 한다. 일설에는 도를 닦는 사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 등 몸 안의 삼시충을 밀어내려고 하지만, 삼시충을 빼내려고 하면 할수록 더 많은 시련을 겪고, 삼시충을 제거하면 생명을 잃게 된다는 설도 있다. 사람이 기쁨과 성냄을 좋아하게 하는데 대인관계를 망치는 욱 성질도 삼시충 때문이다.

 

경신수야(庚申守夜)

경신수야는 송나라의 풍속이었는데 고려 시대에는 임금을 포함한 전 백성이 행하였으며 조선 시대에 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경신수야의 풍습도 삼시충으로부터 나왔는데, 일 년에 여섯 번 60일마다 돌아오는 경신일 밤에 자지 않고 지켜서 삼시가 몸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여 상제에게 보고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원래는 삼시가 형체가 없는 것으로 여겨졌으나 후에는 형태를 갖춘 것으로 표현되기도 하였다.

중국 송나라 때에는 연거푸 세 번을 수경신(守庚申)하면 삼시가 약해지고 일곱 번 수경신하면 삼시를 없앨 수 있다는 믿음이 널리 퍼지기도 하였다.

이들의 목표는 사람에게 욕망으로 죄를 짓게 하는데, 죄를 많이 지어 사람의 수명을 단축시키고 빨리 죽게 하여 그 제삿밥을 얻어먹는 것이라 한다. 사람에게 내리는 선고 형량은 그 경중에 따라 3일에서 300일까지이니 한 해 동안 지은 죄로 최대 1800일의 수명이 줄어들 수 있는 가혹한 형벌이다.

 

인간이 주로 충동 때문에 잘못을 저지른다고 간파한 존재가 삼시충이다.

옛사람들은 충동이 인간 행위에 미치는 중요성을 일찍부터 실감하고, 스스로 마음을 추스르고 매사에 조심하고자 했다.

평소에는 성인군자 같지만, 운전할 때는 매번 순간을 참지 못하고 본의 아닌 거친 언동을 한 후 자괴감에 빠지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또한, 여색을 억제하지 못하여 사회적으로 망신당하거나 가정 파탄이 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며, 뇌물수수나 뒷거래로 공직자나 유력인사들이 곤욕을 치르는 모습을 자주 본다. 더 나아가 강도 강간과 살인 등 강력범죄의 동기는 대개 우발적이고 순간적인 충동이 원인이다. 이 모두 삼시의 충동질 때문이다.

요즘과 같이 오랜 경제 불황과 양극화한 사회구조 등 균형을 일탈한 시기에는 특별히 자신 안의 충동을 억제해야 할 절실함이 있다. 본래 사람은 선한 본성을 가지고 있었으니, 충동을 억제하는 습관을 지속하면 삼시충이 무력화되고 득도의 경지에 이르거나 신선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삼시충을 잡으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스스로 생각과 언행을 갈고 닦을 일이 중요하다. 굳이 삼시충을 죽이지 않더라도 신독(愼獨)하며 일생을 바르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삼시충을 제거한 다음에도 마음과 언행을 함부로 하면 오히려 더 큰 화를 부르게 된다. 결국, 삼시충은 사악하고 탐욕스러운 마음에 바탕을 두고 존재한다. 수도를 통하여 마음을 정화하고 선한 성품으로 욕망과 사악함을 떨친 후, 심도가 깊어져 심신이 맑아지면 삼시충을 보게 되고 모습이 노출된 삼시충은 견디지 못하고 떠나게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삼시충을 제거하기 위해 약을 쓰거나 잠을 자지 않는 편법은 임시방편일 뿐이다.

 

본신과 준비전위(準備電位, readiness potential)

현재 합리적이고 평등하며 밝은 문명 세상인 ‘후천’이 시작되었지만, 지나간 선천은 불합리하고 불공평한 어두운 세상이다. 만물이 후천을 맞고 있지만 유독 사람들은 선천에 머물며 삼시라고 불리는 ‘내 안의 또 하나의 나’라는 존재의 유혹에 넘어가고 통제를 당하고 있다. 사실은 삼시 외에도 많은 존재가 있으나 그중 가장 많이 사람의 일생에 영향을 주는 존재가 삼시이다.

 

삼시는 애초에 여성의 난자와 남성의 무수한 정자 하나하나에 침투하여 대기하고 있다가 남녀가 교합하여 잉태된 때부터 사람의 일생을 농락한다. 이때 난자에 있던 삼시와 수정된 정자에 있던 삼시가 힘겨루기를 하여 이긴 쪽 삼시의 기질로 사람을 평생 통제한다. 삼시의 기질이 제각각이니 사람마다 기질이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삼시는 마치 자동차의 주인을 트렁크에 가두고 제가 주인인 양 마음대로 몰고 다니는 듯한 만행을 저지른다. 즉 삼시는 사람이 수명을 다할 때까지 육체의 주인 노릇을 하는 존재지만, 진짜 주인은 아무 힘도 없이 한구석에서 꼼짝 못 하는 신세로 평생을 지낸다. 삼시를 부르는 또 다른 명칭은 ‘본신’이다. 본래부터(태어나기 전부터) 사람 안에 있었지만, 외부 존재라는 의미이다. 각자가 출생할 때 정해지는 사주팔자나 관상 이전의 근본 문제이기도 하다.

 

세계의 손꼽히는 뇌과학자들이 100여 년이 흘러도 풀지 못하는 숙제가 있다. 바로 ‘준비전위’라는 용어인데, 사람이 어떤 행위를 하기 전 단계인 그 사람의 의지나 결심보다 미지의 뇌파가 항상 앞서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즉 사람이 말하고 행동하는 원인은 사람 자신의 의지가 아닌 그 이전 미지의 것으로부터 결정되는데 그 원인을 뇌과학자들이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이 준비전위 현상을 일으키는 원흉이 삼시이다. 삼시는 상상이나 허구가 아닌 실존하는 존재이니 만인이 경계해야 할 최우선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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