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전 2

숫자와 건축

2010년 3월 27일 (토) 전편에서의 경복궁 외전(外殿)인 근정전을 뒤로하고 사정문을 들어서면 왕이 평상시 거처하고 신하들과 정사를 논하던 사정전(思政殿)이 있다. 이 공간은 왕의 편전(便殿)이었으며 좌측에 동편전인 만춘전(萬春殿)과 우측에 서편전인 천추전(千秋殿)이 각각 자리하여 사정전을 보좌하는 기능을 한다. 사정문은 원형 기둥을 사용하여 중앙 통로의 폭을 넓게 축조함으로써 왕의 출입통로로서의 권위를 반영하였다. 사정전 또한 근정전과 마찬가지로 원형 기둥으로서 건물 사방의 각 기둥 간의 간격중 중앙 부분을 넓게 할애하여 내부 공간의 기가 중앙에 집중되도록 하였는데, 그 비율이 전*후면은 2:2:4:2:2이고 측면은 2:4:2이다. 사정전: 기둥 사이의 칸 수가 홀수(5X3)이다. 참고로, 이태리의..

궁궐 건축과 오행

2010년 3월 19일 (금) 역성혁명에 성공한 이성계는 도참사상에 의한 이씨(한양)득국설(木子得國說)을 현실화하여 그 정통성을 확보함과 동시에, 그 혁명을 도왔던 개경 토착세력의 기반을 붕괴시켜 왕권을 강화할 의도로 한양천도를 추진한다. 태조의 의중을 잘 파악하고 있던 하륜은 당시 공사 초기 단계였던 계룡산 신도안으로의 천도를 반대하고 무악(지금의 신촌과 연세대학교 일대)을 도읍지로 주장하나, 이 또한 그 국이 협소하다는 반대로 무산된다. 당시 왕사(王師)였던 무학대사는 북악산 아래의 명당을 왕궁터로 하자는 정도전에 맞서 인왕산을 등지는 터를 주장하였다. 북악산은 삼각형의 목(木)형이고 인왕산은 금(金)형이니 상대적으로 약한 북악산보다는 기가 더 센 인왕산을 택하여야 한다는 논리로, 금이 목을 쇠퇴(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