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산임수 3

청동기 시대의 풍수지리 2

2019년 8월 1일 자 청동기 시대의 풍수지리에 이어서 부여의 송국리와 산직리 일대의 청동기 양택과 음택지를 답방하였다. 송국리 유적 먼저 송국리의 청동기시대 대규모 취락유적은 주거지 92동, 대형건물지 2동, 분묘 6기 등이다. 이 가운데 복원한 움막들을 조사하니, 수혈주거식으로 산에 가까운 맨 위 움막에 광혈이 맺혀있다. 아마도 부락의 우두머리의 거처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나머지 움막들 반절 정도는 혈권에 포함되었다. 생기 이외의 수맥파를 피하여 움막이 자리한 점으로 보아, 이 시기에도 수맥파가 고려 대상이었으리라는 판단이다. 그러나 생기 또는 수맥파 이외의 또 다른 해로운 기운은 피하지 못하였지만, 당시 청동기인의 기감 수준이 현대인을 능가함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원래의 지형이 유적지 조성공..

엘살바도르의 풍수지리 소고

(요청에 의하여, 이 자료는 '엘살바도르'측에 제공한 풍수적인 국가 발전 방안을 제안한 내용이다.) 1. 엘살바도르 최고봉은 휴화산인 산타아나(2,381m)이고 1946년 폭발이 있었다. 산타아나 화산(©Google map) 2. 풍수지리의 이치 첫째, 풍수(風水)는 바람과 물을 다루는 기술인데, 물을 더 중시하여 “풍수법은 물을 얻는 것이 제일이다”라는 격언이 있다. 즉 물을 얻는지 여부로 국가의 존망을 가늠할 정도이다. 풍수에서는 움직임이 없는 산을 여성에 비유하여 ‘음(陰)’이라고 하고, 물길, 평지, 도로 등은 움직임이 활발하니 남성에 비유하여 ‘양(陽)’이라 한다. 동작이 없어 발현이 안되고 있는 ‘음’의 산을 ‘양’인 물길이 움직임으로 일깨우니, ‘음’의 탤런트가 비로소 발현되기 시작하는 이치..

윤동주 생가

지난 2월 한국신지식인협회중앙회 일원으로 중국 방문 중 시인 윤동주(尹東柱, 1917~1945)의 생가 마을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간략히 살펴보면, 윤동주는 길림성(吉林省) 화룡현(和龍縣) 명동촌(明東村)에서 몇 안되는 벼농사를 짓는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1932년 그의 가족이 30리 떨어진 용정(龍井)으로 이사할 때까지 윤동주는 만 15년을 명동촌의 생가에서 생활하였습니다. 이 기간 중 1925년 수많은 민족지사를 배출한 북간도 민족교육의 거점이었던 명동소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그 후 1932년 용정으로 이사하여 은진중학교와 용정의 광명학원(光明學院)를 다녔고, 1938년 연희전문학교 4년을 거쳐 일본 유학길에 오르나, 조국이 해방되기 2년 전 민족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후쿠오카형무소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