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이야기(칼럼)

청계천과 4대 강 사업 1

풍수명인 2010. 3. 20. 00:14
2010년 02월 06일 (토)

현 정부가 출범하고서 지속적으로 국론을 들끓게 하는 이슈가 세종시와 함께 4대강 정비사업이다. 국가적인 백년대계 사업이지만 불행하게도 국민의 염원과 지지를 받지 못하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무엇에 쫓기듯이 추진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으니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이 사업에 대한 문화재지표조사는 공사 범위를 확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전에 진행하였고 수중 조사는 생략하였다. 청계천 복원 사업을 할 때의 문화재 조사가 일 년 동안 시행되었음을 참고하면, 고대로부터 삼국시대의 중요 문화 유적지인 4대강 유역을 불과 두 달이 채 안 되는 기간에 걸쳐 조사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더구나 4대강 사업의 범위는 청계천의 200여 배에 이르고 있으니 말이다. 또한, 실시설계도면을 국민에게 공개하여 그 이해를 구하고 이견 조율 과정을 거치는 절차를 생략하고 선 공사를 하는 상황이다.

4대 강 살리기 사업은 정부가 애초의 ‘대운하’ 구상을 국민의 반대 여론에 따라 포기하고 내놓은 사업으로, 이 사업을 통하여 여러 긍정적인 효과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이에 대한 반대 의견이 만만치 않아 찬반 양쪽의 견해를 풍수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풍수에 있어서 물은 풍요를 상징하니 국부(國富)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또한, 생기를 머물게 하여 좋은 터를 만들고 인재를 배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4대강 사업의 찬반 주장
 

먼저 이 사업에 대한 정부의 홍보 내용으로서, 홍수 예방과 물 부족 해소, 생태 습지 조성과 하천 주변 조림으로 녹지 벨트를 조성하고 나아가 지구 온난화 해소에 기여, 농업용 저수지 개량을 통한 물 공급으로 하천 수질 개선, 일자리 창출 및 경제 살리기 효과, 지역 특성에 맞는 문화행사 및 이벤트 활성화, 그리고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그리고 자연생태계 복원으로 시민에게 열린 공간을 제공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한다. 또한, 녹색뉴딜 사업으로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고 물 관리의 글로벌리더로서 국가 위상을 제고시킨다는 야심 찬 목표를 열거하기도 한다.

반면, 이 사업을 반대하는 여러 단체 및 개인의 주장으로, 식수원인 낙동강과 한강의 환경오염 우려, 하상(河床)을 준설함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 홍수 발생 때 배수 불량으로 피해 발생가능성, 자연 친화적인 사고에 어긋나는 점, 추후 문제점이 나타나도 완전한 환경 재복원이 불가능하다는 점, 공사 구간에 존재하는 문화재들의 수몰 및 훼손 발생 가능성, 그리고 형편없는 식량 자급률을 농토 잠식으로 더욱 저하시킨다는 점 등을 들고 있다.

또한, 사안의 중대성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합의 없이 졸속으로 진행하려 하는 점, 운영 효율이 지나치게 떨어지는 점, 관광, 레저 방향으로 이득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지나친 비약이며 효용성이 없다는 점 그리고 우리와는 지형적, 경제적 여건이 다른 외국의 국가들의 선례를 끌어들여 사업의 타당성을 끼워 맞춘다는 점을 들고 있다.

이미 홍수 대비책으로 96%의 국가 하천 정비가 완료된 상태에서 조 단위의 천문학적인 예산 투입은 국민의 혈세를 낭비한다는 주장, 몇몇 메이저 건설사들이 4대 강 사업 1차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담합으로 낙찰률이 90%대(통상적인 공공부문 낙찰률은 정부 추정 금액 대비 60~65%대)를 웃도는 결과로 나눠먹기식 공사로 특정 업체에 엄청난 예산 퍼주기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아무튼, 나라 전체가 갈등과 정쟁 속에서 신음하는 듯하니 착잡함을 금할 수 없다.

   
▲ 맑은 물이 흐르는 청계천

청계천의 명암


찬반 양론 속에서 고역을 치르고 있는 4대강의 풍수적인 고찰을 하기에 앞서, 과거 정부의 주요 치수사업의 하나인 청계천의 예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과거 청계천은 고려시대에는 장마 때를 제외하고는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乾川)이었다. 조선 태종은 개천(開川)도감을 설치하고 5만 명의 군사를 동원하여 사대문 안에서 우수와 하수를 흘려보내는 개천(청계천) 굴착 공사를 시행하였다. 그 후 세종, 영조 등도 하천의 준설, 보수작업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서울의 물길을 살펴보면 남산 북쪽 기슭과 북악산의 남쪽 산자락에서 흘러드는 1차 내당수가 청계천으로 모여서 흐르다 뚝섬에 이르기 전 중랑천과 만난 후 이어서 한강과 합류한다. 청계천은 경복궁 터를 힘있는 명당으로 만들기 위하여 한강을 역수(逆水)하여 진행한다. 이 역수 현상은 풍수지리의 측면에서 설명하면, 현 서울의 수태극(水太極) 명당 터를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라는 중론이다. 이처럼 풍수지리는 역(逆)을 추구하는 학문 분야이다.

이런 소중한 지리 유산을 관리하지 못하여 조선 5백 년 동안 많은 빈민이 개천 변에 움막을 짓고 살면서 오물을 버리고 시체까지 버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어서 6·25 사변을 치르는 와중에 나라의 치안이나 통제 기능이 마비된 상황으로 말미암아 하천은 극도로 불결해지고 천변의 판잣집은 날로 늘어나기에 이르렀다.

궁여지책으로 자유당 정부에서는 청계천을 복개하기로 결정하고 1958년부터 공사를 진행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 5.16 군사혁명으로 태동한 제3공화국은 공사를 서둘러 1961년에 1단계 복개공사를 거쳐 1970년대 초 완공하기에 이르렀다. 당시에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 치수 사업이었다.

기막힌 일은 악취가 퍼져 나가지 않고 오수가 보이지 않게 덮어 버린 청계천을 모델로 하여 당시 몇몇 주요 지방 대도시에서도 그곳의 개천을 마찬가지로 복개하였다는 사실이다. 더 나아가 문화유산을 더욱 더 철저하게 보존해야 할 천 년의 고도 경주에서는 성 주위를 둘러 판 도랑인 해자(垓字)마저 복개해 버리는 결정적인 실책을 범하기도 하였다.

이런 연유로 청계천은 30여 년 동안 지하에 묻혀 오수와 함께 탁기(濁氣)가 흐르는 천덕꾸러기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아물거리는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그 후 2003년부터 2005년까지 2년 여 동안 서울시에서는 상당한 예산을 사용하며 청계천 복원 사업을 시행하여 맑은 물이 흐르는 하천으로 탈바꿈하였다. 비록 옛날 같이 내당수가 흘러 모이지는 못하나, 한강물을 끌어오고 지하철에서 나오는 지하수를 흘려 보내는 방법으로 맑은 기운이 흐르게 하였다. 이처럼 잘못된 역사를 뒤늦게나마 바로 잡는 상큼한 일이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 하겠다.

   
▲ 2009년 12월 등축제가 열리고 있는 청계천

여기에서 청계천을 거울 삼아 보면, 하천에는 항상 맑은 물이 흐르게 하여 터에 이로운 기운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도록 풍수지리의 측면에서 각별한 관리를 할 필요가 있고, 비록 오염된 후에도 그것을 깨끗이 정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임이 바람직한 반면, 막대한 재원을 써서 치부를 덮어버리는 임시변통 방법은 극히 경계하여야 할 실책이라는 점이다. 한 가지 강조하는 바는, 과거 역사로 보아 지리를 염두에 둔 정책 입안은 실패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과거 청계천의 치부를 덮어 은폐하던 방편처럼, 4대 강 사업이 그 어떤 딜을 덮기 위한 수단이 아니며, 일부 정치 지도자들의 주장처럼 정치적 지지기반 확보를 위한 도구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덧붙여, 과거 청계천 복원의 성과를 기준으로 4대강 사업의 타당성에 힘을 싣는 '평면적 사고'의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한다. 정권을 잡기 전후와 여야의 각기 입장에 따라 좌우되는 국토의 운명이 개탄스러울 뿐이다. 우리는 잠시 이 땅에 머물다 가는 존재임을 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