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3년(단종 1년) 수양대군이 선왕 때부터 원로를 지낸 신하들을 없애고 스스로 정권을 잡은 계유정난(癸酉靖難)이 있었다. 당시 안평대군을 중심으로 김종서와 황보인 등은 수양대군의 야심에 대항하지만, 오히려 모반으로 몰리며 죽임을 당하게 되고, 이 사건으로 황보인과 외척 관계에 있던 해동 처사 노유근이 은신처를 찾던 중 1454년 청주 가산리 원골 마을로 피신 오면서 교하노씨 청주 입향조가 되었다. 아직 이른 봄날, 해동 처사 노유근 선생의 묘소를 둘러보았다. 묘좌유향에 신파로 정혈처에 든 묘이다. 청룡이 5~6겹씩 감싸고 내백호도 가까이에서 유정하게 혈처를 감싸는데 3~4겹으로 또다시 혈처를 감싸고 있다. 용이 귀성 부근에서 혈처를 향해 크고 넓은 용맥을 만들었다. 용맥의 흐름을 바꾸는 옹사가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