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19일 (금) 역성혁명에 성공한 이성계는 도참사상에 의한 이씨(한양)득국설(木子得國說)을 현실화하여 그 정통성을 확보함과 동시에, 그 혁명을 도왔던 개경 토착세력의 기반을 붕괴시켜 왕권을 강화할 의도로 한양천도를 추진한다. 태조의 의중을 잘 파악하고 있던 하륜은 당시 공사 초기 단계였던 계룡산 신도안으로의 천도를 반대하고 무악(지금의 신촌과 연세대학교 일대)을 도읍지로 주장하나, 이 또한 그 국이 협소하다는 반대로 무산된다. 당시 왕사(王師)였던 무학대사는 북악산 아래의 명당을 왕궁터로 하자는 정도전에 맞서 인왕산을 등지는 터를 주장하였다. 북악산은 삼각형의 목(木)형이고 인왕산은 금(金)형이니 상대적으로 약한 북악산보다는 기가 더 센 인왕산을 택하여야 한다는 논리로, 금이 목을 쇠퇴(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