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유적 풍수답사 여행은 드넓은 만주 벌판과 산맥들을 장시간 차량으로 이동하고 넘나드는 여정의 연속이었다. 차창 밖에는 이따금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처녀 명당들이 수줍게 생기를 흩날리며 필자를 유혹하며 빠르게 사라지곤 하였다. 아마도 재산을 공동으로 관리하고 소유하는 뿌리 깊은 공산 내셔널리즘의 영향으로 지난 역사 속에서 성행하였던 풍수지리 개념을 잊고 사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대체로 산을 의지하며 앞에 너른 들과 물길을 보며 마을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즉 풍수의 대원칙인 배산임수(背山臨水) 이론만은 충실히 따르고 있는듯하다. 우리나라의 산야에는 너무 많다 싶을 정도로 여기저기 음택(산소)을 조성하였으나, 이곳 차창을 스쳐 가는 풍경 속에서는 묘를 전혀 볼 수 없었다. 현지인에게 그 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