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년 내지 천여 년을 생존하는 고목들은
예외 없이 땅의 생기가 집약된 혈에 자리하고
왕성하게 생육하는 금수저 팔자를 누리고 있다.
며칠 전 강화도의 한 유적지에서 본 나무들의
운명이 ‘땅 팔자’ 차이로 생사가 갈린 모습이다.
유난히도 태풍이 잦았던 작년 9월 태풍 ‘타파’로
수백 년 생을 마감한 잔재가 거대하다. 옆에는
보호수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으나 작년 풍수해
이후 철거되었다.
정자 좌우로 두 개의 혈을 맺었는데 태풍으로
희생된 고목은 한쪽 혈에서 다섯 걸음 정도
어긋난 지점에서 오랜 세월 버텨왔던 듯하다.
2019년 9월 이전
태풍 이후
정자 반대편으로 10여 m 떨어진 곳에서는
작년의 수난을 잘 버텨낸 쌍둥이 수목이 ‘금수저’
지력을 배경 삼아 정확히 혈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500년 수령의 강화군 보호수이다.
500년 수령의 혈처 고목
요즈음의 금수저 흙수저 논란은 사람 사회
뿐만이 아닌, 나무들이나 자연 생태계에서 더욱
더 널리 통용되고 회자되어야 할 사안인 듯싶다.
금수저나 흙수저로 갈리는 삶이 공평치 못하다는
상대적인 박탈감을 벗어나 조금만 더 숙고해보면,
‘만물의 엇갈린 숙명은 수많은 윤회전생의
업보에 따른 것이리라.’
상념에 잠시 잠기는 시간이었다. 조금만 더
떨어져서 나를 바라본다면, 초연하고 품위 있게
살아가는 지혜를 얻게 될 듯싶다.